설마, 설마, 했다. 1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설마, 설마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의 거취를 압박하고, 주요 언론사의 사장들을 자기 사람으로 갈아 치우려 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작년 봄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거리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소화기와 물대포를 쏘아댈 때까지만 해도,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에 ‘설마’라는 단어는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 댓글들에 대해 이런저런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며 시비를 걸 때만 해도, 얼마 전 미네르바라는 인터넷 논객을 잡아 가둘 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의 우려와 분노 뒤에는 역시 ‘설마’의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아니면 역시 그놈의 ‘설마’ 때문일까? 지난달 20일 오전, 그러니까 용산 참사가 발생한 바로 그날 오전이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 몇이 필자의 집을 방문했고, 한 지인의 부탁으로 검토해야 할 원고를 출력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출력해야 할 원고량이 상당했기 때문에 느림보 프린터가 원고를 쏟아내는 동안 자연스레 여기저기 포털과 뉴스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고,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 소식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올려놓은 댓글 속 주소를 타고 들어가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동영상을 분명히 ‘보았다’. 거대한 기중기에 컨테이너가 매달려 있는 기상천외한 작전의 현장과 건물 옥상에서 시커멓게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보았고’, 화급한 상황을 전하는 이명선 앵커의 흥분한 목소리도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프린터가 원고를 다 쏟아내자, 필자와 지인은 컴퓨터를 끄고 원고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화제는 정치 현안을 둘러싼 문제들로 옮아갔으며, 수다스러운 고담준론은 문학과 사상과 국내외 정치를 넘나들며 하루 해가 다 지도록 계속되었다. 하지만 오전에 보았던 그 장면과 사건은 단 한 차례도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이튿날 다른 지인의 전화를 받고서야 다시 장면들이 머리에 떠올랐고, 이리저리 기사들을 뒤지면서 점점 이건 뭔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필자 스스로의 자괴감에 대한 고백일 뿐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설마’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 줄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설마’, ‘설마’,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잔혹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날 화제의 중심에 놓여 있던 원고 속에 인용되어 있던 먼 나라 독일의 오랜전 시 한 줄이 이렇게 나를 부끄럽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갔을 때 / 나는 방관했다 /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 항의할 수 있는 /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성근제 인하대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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