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對 정부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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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대형 정치이슈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한 해였다. 하반기 접어들며 불거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강타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주식과 외환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졌으며 연말로 다가오며 실물경제의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또한 G-20 등의 글로벌 정부협력도 강화되고 있지만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시장의 동반 침체가 심각하다. 주요 선진국들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급기야 우리 대통령도 내년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고 나섰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경제학계에 있어서 해묵은 ‘시장 대 정부’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었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남발에 대한 미국정부의 규제 부재로 밝혀지면서 오히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조가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규제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시장의 폭주를 제어할 규제가 없거나 불완전하다면 정부는 이를 새롭게 도입하고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한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금융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의 왜곡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위기를 빌미로 실물시장을 포함한 시장 자체를 불신하여 불필요한 규제를 유지하거나 새롭게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형태의 충격이 가해졌을 때 시장은 일시적으로 흔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보다 안정된 상태로 이끌려는 힘이 내부에서 작동된다. ‘자율조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시장은 충격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며 진화해 왔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기침체는 1930년대의 미국발 대공황에 비견되고 있다. 그 당시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해 미국은 초기에는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강화했다. 하지만 대공황의 여파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한 뉴딜정책의 초점은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스스로의 조정능력의 향상에 맞추어져 있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새해 우리의 수출시장은 물론이고 내수시장도 극도로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그 방향은 조일 것은 조이고 풀 것은 푸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규제가 없어 시장의 폭주가 야기된 영역에 있어서 규제 강화가 필요하지만, 지나친 규제 때문에 시장 본래의 자율조정과 효율성이 저해된 영역에 있어서는 과감한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시된다는 것은 시장의 건전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인한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시장의 효율성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의 활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결국 경제가 운용되는 토대는 시장이며 정부는 그 시장이 보다 활기차고 건전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보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 기축년 우리 경제가 조금씩이나마 건강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소망해 본다.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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