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먹는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 한(漢)나라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통일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창업공신인 한신(韓信)을 내친 사실에서 유래된 교토사후구팽(狡兎死後狗烹)을 줄인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냥개다. 몸이 가볍고 민첩해서 목표물을 추적하고 잡아내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어찌나 용맹스러운지 구약성경에서는 사냥개를 사자와 함께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자라고 꼽고 있다.
그런데 민첩하고 용감하다고만 해서 사냥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사냥개가 될 수 있는 힘은 개만이 가진 절대적인 충직성에서 나온다.
만약에 사냥개가 사자처럼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면,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서 머뭇거리다 놓치고 만다면, 그건 그냥 개일 뿐 사냥개는 될 수가 없다. 결코 용맹스럽다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사냥개의 용맹은 사자의 용맹과는 달라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명령에서 만들어진다. 주인의 지시가 없이는 사냥에 나서지도 않으며, 주인의 응원이 없이는 강자에 덤벼들지도 못하는 것이 사냥개다. 다시 말해 사냥개의 용맹은 복종심과 충성심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종과 충성심이 때때로 사냥개에 있어선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뻔히 죽을 줄을 알면서도 주인에게 자신의 생사를 맡기게 만든다. 토사구팽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면서, 맹목적인 복종을 뜻하기도 한다. 주인의 명령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여느 사람들이 사냥개란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가 않다.
요즘 갑자기 사냥개 논쟁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을 달구고 있다. 당의 한 중진인사가 가진 방송 인터뷰가 그 불씨다. 지지도가 추락하고 반신불수 정당이라고 까지 불리게 된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은 분열을 멈추고 화합하는 일이지 사냥개가 필요한 시기는 아니라는 말이 발단이 됐다.
사냥개로 지칭된 측의 반발은 예상보다도 훨씬 거세다. 정권교체만 성공했을 뿐,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 요원한 이 마당에 사냥을 끝낼 수 없다면서 무리지어 행동에 나서려는 위협까지도 보여준다.
왜 하필 이미지도 별로인 사냥개에 비유한 것인가 싶지만, 양측의 주장만을 놓고 본다면 굳이 시비를 가리거나 크게 나무랄 것은 없어 보인다. 나름대로의 이치가 있다. 해법이 다를 뿐 목적은 하나라고 보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는 10년 전 IMF사태를 연상하리만큼이나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이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치솟는 가운데, 기업도산과 대량실업이 줄을 잇고 있다. 마땅히 정권을 맡은 정부여당의 고민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사냥개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당과 정부 그리고 국민이 힘을 합해 총력으로 이 위기를 이겨내자는 것이고, 사냥을 지금 끝낼 수 없다는 주장은 강력한 리더의 지휘아래 위기극복을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의지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더라도 발언자에게 가서 탈당을 강요하거나 집단으로 위협하는 행동은 좋은 일도 아니고 올바른 일도 못된다. 가뜩이나 불안한 민심에 그것이 바로 ‘사냥’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장호 경영학 박사·前 한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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