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설립 신중히 접근해야

성근제 인하대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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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의 설립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설립이 보류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밀어붙이기로 모양새가 달라지고 있다. 설립을 강행하는 명분은 역시 세계화 시대를 대비할 국제적 안목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 내야 한다는 것이다. 좋다. 세계화 시대를 대비하는 것도 좋고, 국제적 안목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겠다니 더더욱 좋다. 그러나 명분은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이다. 현실을 좀 돌아보자.

필자 역시 학생들에게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일로 업을 삼고 있으니 말하자면 국제적 안목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기 위한 외국어 교육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셈인데, 그 때문인지 국제중 설립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을 좀 이야기하자면 국제중을 설립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필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국제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외국어 고등학교’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외국어 고등학교를 처음 설립할 때에도 설립 목적, 그러니까 설립의 명분은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의 문과에는 바로 그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야말로 넘쳐난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이야기하면 이 학생들이 외국에 대한 (심지어 자기가 전공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대해서조차도) 차별화된 안목을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똑같다. 그렇다면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외고를 나온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외국어는 확실히 더 잘하지 않느냐고. 그게 어디냐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정이 그렇지도 못하다. 적어도 비슷한 수능 성적을 받고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진학한 비외고 출신 학생들의 외국어 실력보다 그리 더 나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낫다고 해도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예의 ‘국제적 안목’이라는 것인데, 현장에서 지켜본 바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거창한 국제적 안목씩은 바라지도 않거니와, 최소한 자기가 전공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기본적 역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의 정도에서조차도 비외고 학생들과 의미를 둘 만한 차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외고를 나온 학생이나 일반고를 나온 학생이나 별 차이가 없다. 똑같다. 똑같다면? 실패한 거다. 외국어 고등학교는 적어도 그 설립 목적에 비추어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실패한 학교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외고의 사례를 냉정히 돌아보지는 못할지언정, 이제는 체급을 낮춰 중학교에서 다시 한 번 재기전이라도 해보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혹자는 또 반문할지 모른다. 외고가 실패한 학교라고? 외고가 이른바 sky 합격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데? 원래 외고가 일류대학 집어넣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었다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정말로,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정말로 이렇게 딱 까놓고 솔직하게 질문한다면, ……. 그렇다면, ……. 뭐 할 말이 별로 없다. 다만, 그렇다면, 국제중을 설립할 때는 외고를 만들 때처럼 적당히 둘러대지 말고, ‘나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중이라도 만들어서 첨단 사교육 시장이라는 21세기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데에 확실히 기여하겠노라’고 화끈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낫겠다. 적어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인성 교육에 더 이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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