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사람에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품격을 나타내는 국격이란 것이 있다. 우리가 인격을 말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 사람의 도덕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이듯이, 국제적인 룰을 잘 지키고 타국을 배려하는 나라일수록 국격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국격이 높은 나라로는 지구온난화나 빈곤국가 원조 등에 적극 대처하는 나라가 꼽힐 것이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 지식재산 관련 문제가 새로운 국격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식재산이란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정보나 지식을 말하며, 그 지식재산을 만들어낸 주체에 대해 일정 기간 그것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부여된 법적 권리가 특허권이나 저작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이다. 오늘날의 지식기반경제는 경제성장의 원천이 노동, 자본 등의 요소투입에서 과학기술, 문화, 콘텐츠 등을 토대로 한 지식재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자국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식재산권 보호를 둘러싸고 선진국들 사이는 물론이고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들 사이에 대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즉 많은 지식재산이 창출되는 선진국일수록 그 보호에 적극적인 반면, 선진국의 많은 지식재산을 도입해야 하는 개도국일수록 그 보호에 소홀하기 쉽다. 하지만 1967년 지식재산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해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설립되고 1995년 발족된 WTO(세계무역기구)도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듯이, 국제적으로는 타국의 지식재산권을 불법으로 모방하고 복제하는 행위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 제품이나 콘텐츠가 중국에서 불법 복제되는 현실을 우려하며 중국을 ‘짝퉁 천국’이라고 조롱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국제 민간단체인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 5월 한국의 불법 복제율이 43%로서 세계 평균치 38%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로 인한 업계 피해액은 5천400억원에 이르며 이는 지난해 발표된 수치보다 1천억원이나 늘었다고 한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조차 해적판 소프트웨어를 버젓이 쓴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국제적인 룰의 준수와 타국에 대한 배려가 국격의 기준이라고 할 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타국의 지식재산권이 자국에서 어느 정도 보호되는가 하는 점이 그 나라의 국격을 가름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지식재산 기반이 취약한 우리나라로서는 스스로 나서서 지식재산권 보호를 외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국제무대나 선진국과의 FTA협상 등에서 지식재산권 보호를 가능한 한 늦추는 것이 우리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다. 하지만 국제협상에서 일단 약속된 사항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명박정부는 국가목표로서 ‘선진일류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정부는 주로 ‘747’ 같은 양적 성장에 치중하고 있지만, 선진일류국가란 그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류’라는 개념에는 그 나라가 국격이 높아서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다는 점이 더욱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다른 나라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우리만 편하고 잘살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보다 품격 높은 나라를 지향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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