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이란 무엇인가?

조성진 성남아트센터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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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공연장이 여기저기 생겨나 개관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데도 처음 들어보는 곳도 많다. 크고 작은 지방 자치단체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실제 효율성은 차이가 있겠지만 겉모양은 모두 번듯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관이 주도해 공연장을 새로 지을 때 취지문이 있기 마련인데 기왕에 생겨난 곳을 참조해서인지 대체로 비슷하다. 이를테면, ‘우리 지역 주민들의 문화의식을 제고하고 지역주민의 문화 향유의 수준을 높이며…’ 등의 말들로 나열되기 일쑤인데 이것을 바꿔 말하면 공연장이 생김으로써 그동안 문화 향유에 굶주렸던 지역 주민들에게 기회를 베푸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연 그 말이 옳은가?

물론 지역에 따라 당연히 그런 결과를 낳겠지만 그것이 주목적으로 표방된다면 공연장의 본질을 모르는 얘기다. 이런 취지는 실은 반세기 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이 생길 때 취지를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온 국민의 몸과 마음이 찢길대로 찢긴 후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때 이런 공연장이 생기면 그 상처를 달래는 큰 효과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 배급제’를 오늘날에도 실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시대착오다. 아니 그보다 공연장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아직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장이란 무엇인가? 공연장은 공연물을 파는 곳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단순명료한 명제가 표명되지 않는 이유는 ‘판다’는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라기보다 공연장 자체의 본질을 몰라서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문화는 상행위와 관계가 없으며 상행위로 인해 상업주의가 된다고 생각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400년 전 베네치아 상인들이 공연물을 팔기 시작하면서 근대 공연 시스템이 생겨났고 바로 상행위로 출발했기 때문에 오늘날 상업주의를 억제할 수 있게 된 파라독스가 확실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고객(관객)을 위한 공연물을 상품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에 공연의 민주화, 나아가 대중화를 이끌어 낸 것이며, 고객 만족을 위해 항상 우수한 물건을 만들려 했기 때문에 관객의 심미안이 올라갔다. 그런 과정에서 우수한 작가와 연기자가 만들어졌고 수준 높은 공연이 쌓임으로써 상업주의로 쉽게 흐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공연장은 높아진 제작비를 다른데서 충당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공연이 점점 페스티벌 화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수한 공연물을 만들어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외지인들이 보게 만드는 것이다. 지역 주민은 외지인에게 객석을 내어주고 그 대신 그들이 흘리고 가는 돈을 챙긴다. 이런 페스티벌의 부가가치 때문에 지역 당국이(경우에 따라 국가까지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공연장은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오든 물건을 파는 곳이다. 손님이 즐기는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점에서 레스토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연장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명쾌하게 드러난다. 즉 맛, 영양, 위생, 환경, 서비스, 가격 여섯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앞의 세 조건을 공연장에 적용하면 재미있고 유익하고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공연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시대에 ‘지역 주민의 문화의식을…’ 운운 하는 발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멀쩡한 모습으로 세워지는 공연장들이 머지않아 흉물로 바뀔 것은 뻔한 노릇이다.

조성진 성남아트센터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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