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의 추억 깃든 화수부두

지나간 것들은 아름다운 법, 삶의 풍요로움 장식했던 포구, 안간망 어선 20여척 백령도 앞바다까지 나가 조업

지나간 것들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때는 삶의 풍요로움을 장식해줬던 곳 가운데 한군데가 바로 도시 속의 포구다.

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아직 기승을 부리기 전인 8월12일 오전 11시 인천시 동구 화수동 제물량거리에서 실개천처럼 좁은 바닷가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시골 아낙네처럼 수줍게 앉아 있는 화수부두가 그랬다.

건너편에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굵직굵직한 공장들이 가동 중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부둣가 같지가 않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제법 알아주던 포구였다. ‘NO 115 명성’이라고 서투른 붓질로 뱃머리에 써놓은 5t 안간망 어선 등 고깃배 20여척이 낮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잘못 찾아왔나”라고 반문하며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았을까?

“잘 나갈 때는 100여척의 고깃배들이 정박했었지. 멀리 대청도까지 나가 가득 고기들을 잡아 부두로 돌아올 때는 어지간한 시장바닥 부럽지 않았지….” 이곳에서 30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연목옹(75)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화수부두의 영화가 꼭 먼 옛날만의 일은 아닌듯 싶었다. 마침 가게 안에 켜놓은 TV에선 박태환 선수의 북경올림픽 자유형 200m 결승전이 중계되고 있어 남녀 어르신 여섯분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꼭 금메달 따야지. 자랑스러워.” 그러나 아쉽게도 박 선수는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서도 김옹은 연신 낚시꾼들에게 팔 묶음추을 매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img5,C,000}

“요즘은 좀 어떠냐”는 질문에 젊었을 때 원양어선 선장으로 근무했다는 노복식옹(62)의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이들은 없고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았지….” 지금 이곳에 정박하고 있는 고깃배는 대부분 5~10t 규모. 9월까지 금어기여서 어선당 5~6명의 선원들은 휴가 중이다. 그래도 ‘이유 있는’ 휴가여서 안심이다. “앞으로는 사정이 괜찮아질 것 같아.” 계속 침묵만 지키던 한 어른이 방파제 공사를 위해 쌓여진 바위 더미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정오로 가까워지면서 갈매기 수십마리가 먼 바다에서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글=허행윤기자 heohy@kgib.co.kr

/사진=장용준기자 jyjun@kgib.co.kr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