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왜 대통령에 뽑혔을까, 근 1년동안이나 후보군 중 발군의 1위 지지도를 유지했다. 당선은 무려 48.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유권자들은 그를 ‘경제선수’로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실물경제에 밝아 잘 살수 있게 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당선되면 경제를 살리겠다”며 무던히 큰 소리 치곤 했다.
그런데 경제가 나아지는 기미는 없다. 되레 나빠진다. 이제 6개월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찾기’처럼 성급한 주문이라 할 수는 있다. 취임 이전, 그러니까 전 정권의 악조건이 미치는 관성적 영향도 있다. 경제는 자고나면 달라지는 날씨처럼, 일시에 확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의문시된다. 과연 ‘경제선수’일까, “경제를 살리겠다”는 다짐이 허풍은 아니었는 지, 이런 의심이 세간에 자꾸 짙어져 간다. 예를 든다. 정부 출범 직후의 경제기조는 성장이었다. 그러다가 안정으로 급선회했다. 물가를 잡는다고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하지만 달러화는 다시 강세로 돌아섰다. 외환보유액만 축냈다. 물가는 계속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국제유가가 130달러대로 들어서자 “경제가 불가항력이다”라고 했다. 원자재 가격의 폭등이 불가항력임을 모를 국민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선 안된다. 유가가 11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젠 “내년 말쯤 가면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국민은 1년 이상 힘들겠지만 견뎌 나가자”고 말한다. 문제는 그같은 말은 ‘경제선수’가 아닌 범부도 능히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가계빚이 가구당 평균 3천841만원(전체는 640조원)이다. 지금 서민층 가계경제는 이자부담도 벅차다. 가계경제가 이자도 제때 못내는 붕괴로 이어지면 금융시장이 파탄난다. 아슬 아슬하게 가고 있다. 빈부의 격차 심화가 이의 적신호다. 소득상위 20% 가구의 월평균소득(731만2천원)은 하위 20%(86만9천원)의 8.41배로, 2003년 이래 가장 큰 소득 격차를 드러낸 게 지난 ‘1.4분기 가계수지동향’이다.
나라 살림은 지난해 1인당 세부담이 422만8천원(전체는 204조8천59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인당 51만5천원이 늘었으나 적자재정이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2천155억 달러로 급증, 받을 돈보다 갚을 돈이 더 많은 순채무국 전락을 앞두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금리를 높여 외화가 모자란 은행들이 돈을 차입하는 형편마저 심히 안좋다. 국가경쟁력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 대상인 55개국 중 31위로 작년의 29위에 비해 2단계가 떨어졌다. 대만(13위) 중국(17위) 말레이시아(19위) 보다도 못하다.
처지가 이런 터에 ‘1년만 참고 견뎌라’하니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하나, 도시 믿기지 않는 것이 유감이다. 희망(希望)은 ‘희망’(喜望)이 보여야 기대가 가능하다. 포르투갈의 항해사 가마가 선원을 이끌고 아프리카 서남단의 희망봉(喜望峰) 회항에 성공했을 때 그러했다. 그런데 ‘한국호’ 경제의 배는 지금 선장이 어디로 끌고 가는지 조차 모른 채, 선원이 된 서민층은 무작정 높은 파도에 휩쓸려 허덕인다.
뛰지도 못하는 판에 날겠다는 것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녹색성장론이다. 물론 앞으로는 신재생 에너지 등 개발로 환경과 성장이 함께 가야 하고, 새 일자리 창출의 녹색산업 투자가 있어야 된다. 그러나 당장은 기술격차나 투자대비 효과에 비추어 거리가 멀다. 두레박으로 바람잡기도 유분수지, 현실성 없는 얘길 하는 것은 화두가 아무리 좋아도 거부감을 일으킨다.
하긴, 현실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있긴 있는 것 같다. 금명간에 ‘추석물가 및 민생안정대책’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발표할 모양이다.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마땅하다. 다만 미덥잖은 건 지난번 물가대책 같아서는 헛방에 그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때 마련한 51개생필품 집중관리대책이 아직껏 살아 있다고는 말 못할 것이다. 전시효과로 머물다가 사라질 대책보다는 근원적 처방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투자는 경제의 수혈이다. 경제회생은 수혈로부터 시작된다. 재계에 정체된 투자자본이 약 50조원이다. 이 돈이 새롭게 산업자원화하면 서민층의 돈도 좀 돌고, 일자리도 늘고, 내수도 더 신장될 것이다. 그런데 꽉 거머쥐고만 있다. 투자 효과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지만 언제나 말 뿐이다. 규제개혁도 말만 요란하다. 뭣보다 대기업의 경영상 필수적 선호조건인 수도권 투자 입지를 꽉 틀어막고 있다. 대통령이 이의 잘못을 모를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판단에 주술적 동티가 끼었기 때문이다. 초심을 촉구한다. 안그러면 ‘경제선수’로 보았던 국민이 그를 잘못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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