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이른바 올림픽 삼매경에 빠졌다. 초반부터 순항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은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를 잊게 하는 청량제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또 한 번의 올림픽 추억을 쌓으면서 느끼는 단상을 적어본다.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1976년 여름,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숨죽이며 라디오 중계에 귀 기울였다.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금메달,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을 마침내 따낸 것이다. 현지와의 전화통화를 전해주던 라디오에서 “정모야, 욕봤다”라고 외치던 양 선수 모친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 여름,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동네 꼬마들은 레슬링을 한다며 수없이 평상 위를 뒹굴곤 했으며, 양정모는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매번 올림픽을 나갈 때마다 우리 선수들은 하나나 둘 정도가 아니라 무려 열 개를 훌쩍 넘는 메달들을 따오고 있다. 금메달리스트만 해도 벌써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부유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유도의 최민호 선수는 와신상담 끝에 드디어 금메달을 따게 되자 준결승까지 승리 후 여유롭던 모습과는 달리 이내 엎드러져 울고 말았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다른 나라 선수들이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순간 그동안 얼마나 맺힌 게 많았으면 저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수년 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로 자기 분야의 한국신기록을 세울 정도의 성과를 이뤘다고 해도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게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각종 매스컴에서도 오직 금메달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심지어는 금메달 아니면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가 된 것이다.
어쩌면 올림픽 금메달에만 열광하는 이런 성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과정은 묻지 않고 오직 결과에만 주목하는 풍조. 성공에는 환호하지만 실패에는 싸늘한 관심…. 이런 풍토들이 우리 사회를 더 천박하게 만들고, 우리들 마음을 스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게 진정 소중한 열매는 올림픽 성적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는 각자가 올림픽 대표선수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바들이 더욱 귀하고 소중한 보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개인만의 경험으로 사장시키지 않고 우리 스포츠계에 재투자할 때 우리나라 스포츠는 더욱 발전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속속들이 더 내실 있는 사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어디 올림픽 선수뿐이랴? 우리 개개인은 비록 사회적으로 대단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해도 자신의 가족에게는 세계적 스타나 유명인보다 더 귀한 존재인 것이다. 각 분야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필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경험들이 쌓여서 우리 사회가 되는 것일진대 우리 중 누구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금메달을 따는 천재만이 아닌 우리 이웃 모두를 가치 있게 여기고, 각자의 삶의 지혜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넓혀 가자.
박진우 수원대학교 통계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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