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餘滴(여적)

덥다지만 더울 때다. 엊그제 중복에 이어 말복이 오는 8월8일이다. 추울 땐 추워야 하는 것처럼, 더울 땐 더워야 한다. 논 물은 김 매는 남정네 손이 따끔거리도록 끓고, 밭고랑이에서 호미질 하는 아낙네 얼굴에 땅김이 후끈 후끈 솟는다. 대지가 달아 오른다. 삼복 더위속에 복날마다 벼줄기 마디가 한마디씩 생긴다. 세 마디가 되고나서 이삭을 팬다. 밭곡식은 작열하는 햇살로 열매가 영근다. 오곡백과를 살찌우는 것이 여름철 염제(炎帝)다.

현대인들은 더위를 더 타게 돼있다. 초저녁 대나무 평상가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온 가족이 담소를 나누며 시원한 우물속에 담가둔 참외며 수박을 먹곤 했던 그런 공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수수깡 엮음에 흙손질한 황토벽 집도 볼 수 없다.

현대인은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더미에서 산다. 도시는 말할 것 없고 농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이란 게 시멘트로 된 콘크리트 투성이다. 아파트나 빌라는 물론이고 단독 주택도 마찬가지다. 집을 나서면 또 아스팔트 세상이다. 어디를 가든 맨땅은 밟을 수가 없다.

어느 연구조사에 의하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복사열은 상상을 넘어선다. 콘크리트 지붕이나 벽은 섭씨 60도까지 올라가고, 아스팔트는 섭씨 70도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이의 복사열은 대기를 달군다. 해가 져도 이내 식지않아 열대야를 이룬다.

밤에 집밖의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인 더운 밤이 열대야다. 대기 자체가 지닌 더운 기온도 기온이지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복사열이 그같은 대기를 더 덥게 가열하여 열대야를 심화 하는 것이다. 기상대가 발표하는 기온은 기상대내 초원에 설치된 온도계에서 관측된 기온이다. 이에따라 발표되는 기상예보 온도는 도시내 실제 체감 온도와는 차이가 난다. 아마 5도에서 7도 차이는 있을 것이다.

여름철 더위로 유명한 데가 분지로 둘러싸인 대구다. 대구로 전근간 직장인들은 처음 맞는 여름 한철엔 으례 더위를 먹어 고생하기가 예사다. 조선일보와 서울신문에서 23년간 대구주재기자였던 필자가 취재에 애먹었던 것 중 하나가 폭염 사진이다. 본사 지시는 특유의 현상을 그림으로 잡으라지만 아무리 더워도 다 비슷비슷한 것이 더위 사진인 것이다. 그런데 섭씨 35도가 넘으면 아스팔트는 곤죽이 된다. 대구역사를 배경으로 중앙로 아스팔트가 차바퀴 자욱들로 얼룩진 사진을 찍어보냈지만, 이도 한 두번이지 해마다 같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에어컨을 만들었으나 냉방병을 유발한다. 가장 좋은 납량법은 자연 친화다. 요즘 만병통치 비법처럼 내놓은 황토○○니 심지어는 황토○이니 하지만, 전에는 아예 살기를 황토벽 집에서 살았다. 언젠가는 황토를 깐 기와지붕, 수수깡 엮음의 황토벽에 맨마당 정원을 둔 집이 아파트보다 선호되는 복귀현상이 올 것이다.

여름철 납량으로 탁족(濯足)은 간편하면서 효험이 높다. 옛 선비들이 야외로 시회(詩會) 나가 점잖은 체면에 웃통벗고 멱은 못감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것이 탁족이다. 지금 역시 아무데서나 멱을 감지 못하는 것은 체면도 있지만 공중도덕 때문이다. 간소한 나들이로 탁족을 즐길만한 곳으로는 양평 가평이 으뜸이다. 수려한 산세에서 흐르는 계곡물은 가히 살아 숨쉬는 청정지수(淸淨之水)다. 수원 근교에는 천혜의 광교산이 있다.

생각해보면 덥다는 것은 육체적 반응이면서 심리적 반응인 것 같다. 사람이 열불이 나면 더 더운 게 심리적 반응인 것이다. 반대로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더위를 덜 탈 것이다. 이 여름철 폭염을 잘 넘기는 비결아닌 비결을 들자면 마음을 스스로 가다듬는 생활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흔히 이를 수양이라고 하지만 거창하게 수양을 말 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더위와의 씨름은 때로는 맞부딪치는 것이 왕도다.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감내하는 것은 또 다른 납량법이다. 사우나는 호수가 많은 핀란드 특유의 증기욕·열기욕이 전래된 것으로, 이완된 피부를 호수에서 수영으로 수축시키곤 했던 것이다. 한데, 사우나를 안해도 한번 쏟아지는 여름땀은 비지땀으로 변한다. 굳이 닦지 않고 땀이 나오고 싶은대로 놔두는 것은 이도 사우나다. 자연식 사우나다. 작업을 하거나 운동으로 비지땀을 쏟아내는 것은 더욱 좋다.

어차피 집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엔 샤워를 한다. 땀을 많이 흘린 날 갖는 샤워의 상쾌감과 땀을 별로 흘리지 않은 날 샤워 뒤에 갖는 상쾌감은 차이가 있다. 여름엔 땀을 적당히 흘리는 게 제격인 것은 심신 양면으로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불이 나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 매사가 그 모양이다. 보수층의 이미지를 혼자 다 망가뜨리고 있다. 올 여름은 그래서 열불이 더 난다. 열불도 보통 열불이 아닌 ‘명박열불’이어서 스스로 가다듬기엔 주체스러워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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