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결함’

전 정권의 뒤치다꺼릴 하다가 잘 못해 쪽박 신세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젠 노무현 정권이 남긴 과제다.

그런데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이만이 아니다. 편가르기, 코드인사 등도 이어 받았다. 인적쇄신을 한다며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을 물갈이한 것이 오십보백보다. 맹자(孟子)가 양나라 혜왕이 정사에 관해 질문한 대답끝에 “전쟁에 패해 오십보를 물러난 것이나 백보를 물러난 것이나 도망친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비유로 정사의 시시비비를 설파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비서실 직제를 개편한다는 데 웃기는 소리다. 직제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잘된 직제도 잘못 운용하면 소용이 없고, 못된 직제도 잘만 운용하면 소용이 있다. 국민과의 의사 소통 문제는 직제에 있지 않다.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대통령이 측근을 안 쓸 수는 없으나, 측근만으로 권좌를 채워서는 들어야 할 듣기싫은 소릴 듣지 못한다. 측근은 늘 듣기좋은 소리만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모든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있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안 한다’지만 마다하는 사람도, 필요한 사람 같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써야 한다.

그러나 인재를 보는 이명박의 안목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언제나 자기 주변에서 사람을 물색하는 데 그친다. 여당내에서 아직도 ‘친이’ ‘친박’소리가 나오는 것은 도덕성의 치명적 흠결이다. 보수진영도 그렇고, 더 나아가 진보진영의 사람도 쓸만한 인재는 쓸 줄 아는 큰 국량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을 다 하는 측근보다는 국사에 충성을 다 하는 인재가 대통령을 빛나게 해줄 사람이다.

대통령이 국정 구석구석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시시콜콜 관여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람을 썼으면 맡겨야 한다. 설령 대통령의 의중에 거슬리는 점이 있어도 일을 잘 하면 놔둬야 한다. 단안을 내려야 하는 것은 의중도 받들지 못하고, 일도 잘 못하는 것을 더 용인할 수 없을 때다.

전두환을 예로 든다.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에 문제가 많은 정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물가 등 민생이 가장 안정됐던 것이 그 시대다. 물론 저유가 등 ‘3저’의 시운이 따라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자신이 기용한 사람들에게 “내가 뭘 아나?” “믿고 맡길테니 한 번 잘 해봐!”하는 식으로 힘을 실어준 용인술이 주효했다. 그 중에는 신군부의 반민주화에 저항했던 인사도 있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닮은 또 한 가지는 개혁을 한다면서 저지른 반개혁적 인사다. 정부 산하 공기업 임원을 자기네 패거리 일색으로 채운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공기업의 체질을 개혁한다면서, 공기업 임원 자리를 논공행상의 전리품으로 삼았다. 이명박 정권 역시 다름이 없다. 아직도 배겨있는 노무현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못해 안달인 것은 개혁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명박 자신의 패거리에 자리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공기업 임원은 내부의 전문가들로 채우는 자율적 독립성이 진정한 개혁의 시발점이다.

이 와중에 요지경속인 것은 KBS 등 공영방송이다. 이미 전 정권 세력이 깊이 부식된 공영방송에 대한 이 정권의 물갈이 시도를 두고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이 방송 장악을 음모한다”고 힐난한다. 뭣 묻은 뭣이 겨묻은 뭣을 나무라는 격인, 이 같은 비난을 이명박이 듣는 것은 평소 자기사람 심기에 바쁜 부도덕한 인사에 기인한다.

대통령 중임제도 아닌 단임제다. 대통령이 됐으면 되기까지의 주변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측근들에게 ‘배신자’소릴 들어야 된다. 그 많은 측근을 챙기다가는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측근으로부터 벗어나면 국민과 가까워진다.

국민과의 소통은 대통령 자신이 민심의 바다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예컨대 촛불시위에 컨테이너로 ‘명박산성’의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쌓기보단 촛불시위 현장을 직접 찾았어야 했다. 신념있는 이런 도덕적 용기를 보일 때 촛불민심 또한 감동을 받는다.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고 한다. 의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민사회는 다원화사회다. 국민의 목소리에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다. 이런 저런 목소릴 다 섬길수는 없다. 도대체 어느 국민의 목소리를 하늘같이 섬기겠다는 것인가, 그냥 ‘섬기겠다’고 해서는 흔히 하는 소리로 들려 신뢰를 얻지 못한다.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정중하게 고개 깊숙이 숙여 인사하는 것도 한도가 있다. 안다, 어려운 시기다. 경제성장률 7% 공약이 6%로 낮아졌다가 5%도 안 되는 4.7%로 떨어졌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대운하’니 ‘공기업 민영화’니 하는 시의에 안 맞는 허황한 얘기보다는 국정의 범사부터 잘 꾸려가는 것이 실추된 신뢰를 회복한다 할 수 있다.

물론 국정의 미래지향적 거시지표는 있어야겠지만, 완급의 충돌이 있어선 안 된다. 완급의 충돌은 미래학이 제시하는 우려이나, 지금도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대통령은 자신의 결함인 국정운용 스타일을 크게 반성해야 할 때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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