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지인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퇴근할 때 교통체증에 꽉 막힌 도로 위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넓은 도로가 주차장 같이 될 때 으레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갓길로 빠져나가 끼어들기를 하는 얌체 운전자들. 그날은 해도 너무하다 싶게 많은 차들이 반칙을 하여 제 차선에서 바로 가는 차들은 더욱 더디게 갈 수밖에 없었다. 하여 필자는 거창하게 우리나라의 운전 문화에 대해 불평하는 말로써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랬더니 함께 가던 지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박교수, 오늘은 퇴근이 좀 늦겠구나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갑시다. 이 차선으로 가면 늦을 것이 뻔한 줄 알면서도 굳이 이 차선에 서서 가는 차들이 우리 말고도 저리 많지 않소. 언뜻 바보 같아 보이는 선량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소.” 그랬다. 나는 반칙하는 차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당연한 듯 규칙을 지키고 있는 운전자들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청와대 및 내각의 재산내역이 공개된 이후, 고위 공직자들의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를 보며 뭇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였다. 혹자는, 그 정도 경력에 그 정도 재산이 있는데 부동산 투기 안 할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강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다선의 국회의원 모씨는 부동산 투기가 우리 경제를 왜곡시키는 근원이라 하여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부당한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 분은 살아오는 동안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 자신 같은 바보 몇 명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여 기꺼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한다.
굳이 원한다면 피할 수도 있었던 군 복무를 자원하여 마친 유명 연예인 모씨, 정작 자신의 삶은 그리 호화롭지 않지만 자신이 땀 흘려 번 거액의 돈을 매번 즐거이 쾌척하는 기부천사 가수 모씨,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에 빠진 어린이를 구출하려다 자신은 장애인이 된 철도원 모씨, ……. 모두들 어떤 면에서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령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당장 목전의 불이익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바른 길을 선택하는 이런 분들이 과연 바보일까? 오히려 그들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귀중한 보배들인 것이다.
바닷물 속의 염분량은 채 3%가 못 된다고 한다. 하지만 3%도 안 되는 그 염분으로 인해 바닷물이 부패하지 않게 되어, 바다는 많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무리 교통체증으로 차가 막혀도 당연한 듯 자기 차선을 지켜 가는 사람들, 일확천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기꾼들이 횡행해도 괘념치 않고 묵묵히 정로로 나아가는 사람들, 자신만의 이익과 편리를 좇는 무리들 속에서도 기꺼이 자신을 드려 다른 사람들을 부요케 하려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바다의 염분과 같은 ‘바보 같은 사람’, 아니 ‘보배 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앞으로는 출퇴근길에 길이 막힐 때, 얌체 운전자들을 보며 비난하는 대신에 기꺼이 원칙대로 늦는 길을 선택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을 보며 칭찬하려 한다. 아니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이 바보 같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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