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현실 정치

김기봉 경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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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사가지만 TV 사극을 거의 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극을 열심히 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그 기사가 실제 뉴스처럼 실리고 네티즌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전 필자는 처음으로 ‘이산’을 주말에 재방송으로 봤다. 정조가 노론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규장각에 서얼을 등용하려고 하자 노론의 수장인 좌의정 장태우를 위시한 노론 신하들은 등청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에 대해 정조는 등청하지 않는 신하들을 해직하고 부서를 통·폐합해 관직수를 줄이는 한편, 새로운 관료를 파격적으로 충원하는 과거시험을 실시한다는 영을 내린다. 노론이 전례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또 반발하자 정조는 시대변화에 맞게 조정을 실용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사극이 이런 식으로 정조 개혁을 연출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하는 실용정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사극은 현실을 반영해 과거를 상상적으로 재구성한다. 이것을 보는 역사가는 정조가 과연 그런 일을 실제로 했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런 문제보다는 과거의 권력투쟁에 투영된 당대의 정치현실을 읽는 것에 더 재미를 느낀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파싸움의 희생자라는 문제의식으로 붕당정치를 철폐하기 위해 모든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함으로써 절대왕권의 확립을 꾀했다. 이에 대해 드라마에서 장태우로 나오는 실제 인물인 노론의 영수 김종수는 왕의 친위세력은 왕의 신하들이지 조정의 신하들은 아니며, 그런 신하들로 채워진 규장각은 왕의 사적 기관이지 국가의 공공기관이 아니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교체 이후 단행되는 코드인사는 문제가 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권은 전통시대에는 왕, 그리고 우리시대에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최고 통치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최고 통치자의 영이 서지 않으면 국정운영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정은 왕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인 국가기관이라는 비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사에서 정조시대는 우리가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로 해석되지만, 정조 사후 조선왕조는 세도정치로 치달음으로써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개혁군주로서 정조의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그가 없이도 작동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국난들을 겪고도 조선왕조를 500년이나 지탱할 수 있게 만든 기반은 왕이든 세도가든 누구도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했던 공론정치의 구조와 시스템이었다. 물론 이로 인해 당파싸움이 끊이질 않음으로써 국론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의 붕당정치는 오늘날의 정당정치와 같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권력분립을 이뤄냈다.

이같은 측면에서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정조의 개혁을 잃어버린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의 기회가 아니라 붕당정치 구조의 붕괴로 인한 조선왕조 몰락의 계기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승만 이래로 대통령은 절대권력을 추구했다. 승자는 모든 권력을 독식하길 원한다. 모든 권력을 한사람에게 집중시키면 비판은 차단되고 아부만이 넘쳐난다. 한 정당 내에서든, 의회에서든 권력의 독점은 부패와 몰락을 유발한다. 타자란 나의 적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환경이다. 토인비의 말대로 도전과 응전으로 사회와 개인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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