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명의 고향인 그리스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가 사는 고장을 떠나 다른 장소의 풍광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넘어 4천년 이상의 시간을 넘나드는 역사공부였다. 무엇보다도 아테네 민주정의 현장을 보고 느꼈다는 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아고라를 거닐며 소크라테스가 거리의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상상해 보고 재판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사형을 선도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재판이 끝나면 당신들은 삶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면 나는 죽음의 길로 떠나지만, 앞으로 누가 더 행복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기원전 399년에 벌어진 소크라테스 재판은 아테네 민주정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아테네 시민들이 가장 위대한 성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게 민주정의 딜레마다.
아테네 영광의 절정은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승리를 통해 아테네는 그야말로 ‘국민 성공 시대’를 열었다. 헤로도토스는 아테네가 승리한 이유에 대해 “제국인 페르시아에게는 왕 한 사람만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민주정을 꽃피운 아테네에게는 시민 모두를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는 페리클레스 시대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다. 대표적 유적지인 파르테논 신전이 이때 만들어졌다. 신전 건축의 비용은 아테네 시민들의 세금이 아닌 스파르타를 위시한 전체 그리스인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재침을 막기 위해 동맹을 결성하고 그 기금을 델로스 섬에 보관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동맹의 금고를 델로스 섬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기고 파르테논 신전 건축에 유용했다. 따라서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인들에게는 민주정의 성전이지만 다른 그리스인들에게는 아테네 제국주의 상징물이다. 이처럼 아테네 민주주의와 제국주의가 동전의 양면처럼 될 때, ‘국민 성공 시대’는 ‘성공한 국민 시대’로 전환된다.
아테네 제국주의에 대한 다른 그리스인들의 반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성공한 국민 시대’를 마감하고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을 비난하는 반체제적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고발당해 재판에 회부됐다. 그렇다면 민주정을 옹호한 아테네 시민들과 이를 부정하고 현자의 정치를 주장한 소크라테스 가운데 누가 더 옳았는가? 이 문제는 인류 역사의 영원한 수수께끼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성공 시대’의 기치를 들고 출범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주체들과 정책들을 보면, ‘국민 성공 시대’가 아니라 ‘성공한 국민 시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대학 졸업자와 특정 지역 출신, 강남 부자들과 같은 성공한 국민들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정치가와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여론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선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성공한 국민’이 아닌 ‘국민의 성공’을 위한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누가 ‘국민의 성공’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 국민’이 ‘국민의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 ‘국민의 성공’인가 하는 점이다. 물질이 아닌 정신의 성공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바쳤다.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성공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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