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에 신명나는 문화 비전을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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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썼을까? ‘국민’과 ‘민족’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국정의 철학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인 단어로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다름 아닌 ‘경제’이다. 경제는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 또는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준말로 정치의 첫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느 대통령이든 공약에서나 취임사에서나 경제 정책에 대한 의지와 구상을 밝히는 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12월19일 대선에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경제 살리기에 대한 표심을 드러냈다. 이제 여남은 날 뒤면 그 기대를 한 몸에 안은 새 정부가 출범한다. 아니나 다를까. 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일곱명 가운데 다섯명이 학부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므로 대통령 당선인은 오히려 경제 이외의 소중한 가치를 더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국민들의 표심대로라면 경제는 정녕 잘 될 터(진정 ‘소망’한다)이지만, 국가 역량이 자칫 경제에만 집중돼 다른 지순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경제’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가치지향적인 단어는 ‘통일’과 ‘문화’이다. ‘통일’은 이승만 초대 정부 때부터 불변의 가치였으며, ‘문화’는 이 시대에 더욱 받들어야 할 으뜸의 가치다. 지난 대선을 통해 특히 문화정책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은 문화의 경제적 환산 값만을 다퉈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깊은 우려를 보냈다. 대통령 당선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며, 그의 신년회견에서도 ‘문화’는 한 마디가 없었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시대가 태평성대다. 그런 쪽으로 많은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문화예술계 원로들에게 한 덕담이 문화정책일 수는 없다.

문화와 산업은 어깨 겯고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문화산업육성론이 ‘돈 되는 문화’에만 경도될까 걱정된다. “문화도 경제”라는 당선인의 말이 경제를 위한, 문화의 도구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문화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다른 모든 도구들의 목적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아니다. 그 돈을 도구로 문화적 삶을 영위할 때 행복을 느낀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의 문화정책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문화를 총체적 사회 변화의 도구로 간주했다고 지적하지만, 문화가 경제의 도구가 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문화는 인간 정신 활동의 총화로서 적층(積層)되기 때문이다.

문화는 민간부문에 의한 공급만으로는 효율적인 상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재화다. 시장에만 맡겨서는 바람직한 수준에 이르기 어려워 공공부문이 적극 권장해야 하는 가치재(Merit Goods)라는 뜻이다. 물론 공공부문의 지나친 보호는 자생력 없는 나약한 온실 문화를 양산하는 결과를 빚겠지만, 그렇다고 문화가 시장 권력에만 좌지우지되는 사회는 결코 양극화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정책에서는 시장 이상으로 공공의 역할이 요구된다. 문화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동질성의 매체로서 통합적 기능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첫째라 해도 모두일 수는 없다. 경제가 첫째라 해도 모두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문화를 자본에 종속시켜 결국 문화의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화의 가장 큰 덕목인 다양성과 경제 발전의 샘인 독창적인 생각(창의성) 등은 크게 위협받게 된다. 뿌리로 물을 먹지 못하는 꽃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며, 피운다 한들 오래 갈 수 있을까. 문화산업의 진짜 뿌리는, 그것만 해서는 밥도 먹기 어려운 기초예술이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사에는 ‘문화’가 ‘경제’보다 더 나왔으면 한다. 그렇게 신명나는 문화 비전을 기대하는 것이 혼자만의 과욕은 아니리라.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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