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감을 목전에 두었던 구랍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이른바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마음이 씁쓸했다. 일부 종교인들과 사형폐지운동 단체들이 함께해 지난 1997년 12월30일 이후 10년째 집행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사형제도가 국제사면위원회의 기준에 의할 때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며 자축의 한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찍이 카우프만(Arthur Kauffmann)이 언급했듯, ‘형벌의 인도화의 역사는 원래 시대정신에 반항하면서 희망을 갖고 인내함으로써 미래의 성숙을 기대한 인간의 역사’라고 할 것이니, 사형폐지운동 또한 인류문화의 진보와 성숙에 기인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움직임의 일단이라 이해할 수는 있으리라. 다만 오늘날 사형폐지운동 단체들에 의해 제기되는 사형폐지의 논거들 모두가 범죄의 실상 및 형벌의 현장과는 지나치게 괴리된듯해 사뭇 공허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종교·인도적인 관념론에 지나치게 경도된듯 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형제의 범죄예방효과에 회의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사형의 범죄억지력을 추단할 수 있는 통계적이고 객관적인 국내외 자료를 소개하자면, 미국의 경우 사형집행이 보류됐던 1966년부터 1976년 1월까지의 기간을 포함, 1980년까지 살인범이 인구 10만명당 5.6명에서 10.2명으로 거의 두배로 늘었으나, 연평균 사형집행이 71건으로 늘어난 1995~2000년에는 살인범이 인구 10만명당 5.5명으로 46% 감소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또한 사형이 집행됐던 1988~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사건 발생건수가 연평균 672건이었으나 사형집행이 보류된 1998~2005년 연평균 살인사건이 1천18건으로 51.4% 증가하고 있음을 자료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확정된 사형의 집행유무에 따라서도 살인범 등 강력범죄의 증감이 확연하게 구분됨을 통계를 통해 관찰할 수 있을진대, 하물며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될 경우 생명보장의 갑옷을 입고 얼마나 많은 흉악범죄가 미소를 띠며 창궐할지는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사형제도 폐지는 일반 국민들의 소박한 법감정을 다스려 가야 할 공형벌(公刑罰) 본연의 임무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 사형집행 시 피해자의 가족을 배석·참관하게 하는 연유도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응보욕구의 충족과 함께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위탁한 공형벌에 대한 신뢰감을 가일층 제고시켜 나아가는데 있음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형벌의 현장인 행형시설에서도 사형은 집행의 유무를 논외로 하고 형벌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많은 사형수들이 형 확정 후 손쉽게 종교에 귀의해 열심히 활동하고, 단시간에 선행(善行)을 흉내 내고 연습한다. 감형의 기대 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중의 발로이건, 또는 지은 죄에 대한 회오의 몸짓이건 간에 이들의 이러한 돌변은 다름 아닌 사형제도 자체에 내재된 형벌의 위하력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사형이라는 형벌의 무게가 극악무도하던 범죄인들까지 왜소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사형제도가 교화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절실함을 일깨워 주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종국적으로 사형제도는 가정파괴사범 등 흉악범을 제외하고는 사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대폭 감축시키고 개전(改悛)의 정을 참작한 선별적 감형 등 형집행의 융통성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야지, 제도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아울러 사형의 대체수단으로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는 교정·교화대책의 무용(無用) 및 인간의 희망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더욱 잔혹하고 우리의 행형 현실에도 조화되지 아니함을 차제에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흉악한 범죄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치러야 할 고통스러운 대가가 있음을 예고하고 실행함은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량한 이웃들의 존엄을 담보하는 정의의 회초리로 역할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생을 가라앉지 않는 아픈 기억의 파편들로 인해 사는 것이 다만 고통일뿐인 피해자들에게 사형폐지운동은 또 다른 학대요 고문으로 다가들 수도 있다. 이미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사형수들의 뒤틀린 생활태도에서 형벌의 무게가 훼손되어짐을 느낀다. 교정시설의 담이 아무리 높은들 바람에 묻어오는 바깥세상의 기류마저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태희 서울지방교정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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