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낙향

이런 예가 없다. 일찍이 권력자의 낙향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대식 장원(莊園)의 신도시를 축성한 적은 없다. 대통령 노무현의 고향,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부지 3만900여㎡(1만600여평)에 짓고 있는 그의 사저는 가신(家臣)들 식솔까지 거느리는 규모로 중세기의 성곽을 방불케 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다 낙향했지만 집을 새로 지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다. 옛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낙향한 것은 생가였다.

그런데 국내에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할 때마다 연희동, 상도동 사저를 증축했다. 동교동의 김대중은 빌딩을 세웠다. 노무현이 퇴임후 봉하마을로 낙향할 것이란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6월이다. 신선하게 들렸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이 집을 증축하거나 빌딩을 지어 서울에 계속 죽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퇴임 대통령의 첫 낙향이기 때문이다. 한데, 낙향도 낙향 나름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고향에서 살 집을 장원 규모로 짓는 것을 미리 알았던 사람은 측근 등에 국한해 몇 안 됐던 것 같다.

생가(生家)에서의 노무현에 비해 장주(莊主)의 노무현은 분명히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대통령에 올라 청와대에서 낙향하는 것만도 더 할 수 없는 광영인 데, 거기에 어마어마한 장원의 주인이고 보면 가난에 찌들었던 생가의 옛 노무현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그의 호사의 극치는 결과론적으로 기만적 정치행각의 소산으로 보는 대중(大衆)의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가 보인 언행은 대개가 빈곤계층을 대변하는 좌경 이념이 물씬거렸다. 그래서 언제나 기득권을 질타하던 자신이 어느새 신기득권의 영화에 도취됐다. 대중영합주의에 기대가 부풀렀던 대중의 삶은 더욱 고단한 가운데 그는 포퓰리즘의 과실을 챙긴 신귀족이 되고 말았다. 봉하마을의 대저택은 그 상징이다.

그가 최근에 자신의 정치 이념에 이름을 붙인 시민민주주의라는 게 어떤 것인 진 아직 잘 알 수 없다. 퇴임후에 이에 대한 책을 쓸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지만 그간의 행적을 그렇게 안 보는 학계의 견해가 또 있다. 노무현 정권이 중심이 된 민주화는 국민중심이 아닌 국가중심의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얼마전에 김해시청에 들러 가진 주민간담회에서 “저 스스로 흡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때로 잘못한 것도 있으나 나라와 국민들께 부담을 주는 큰 사고를 낸 것은 없다 생각한다”고 했다. 참으로 관대한 자평이다. 국민에게 내내 부담과 불안과 혼란을 준 것이 그의 재임 4년8개월이다. 그만 두기까지 또 무슨 사고를 칠 것인지 여전히 걱정이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하면 검토해 보겠다”는 등 수차 헌정질서 교란을 서슴지 않은 것은 말로 그쳤다고 쳐도, 국가발전과 민생문제에 끼친 저해는 참으로 크다. 기업도시다 혁신도시다 해서 되지도 않을 일로 정부예산 절반에 버금가는 120조 가량의 돈을 보상금으로 뿌리면서 벌인 조령모개식 부동산정책은 되레 투기만 조장하였다. 기업규제를 풀기만 해도 연 7% 성장이 가능할 성장동력을 옥죄어 조기퇴직, 청년실업을 양산한 가운데 지난 2년새만도 국내에 투자된 83억달러의 외자를 역시 과잉규제로 이탈시켰다. 그간의 국민적 고통을 어찌 여기에 다 말할 수 있겠는 지, 낭비된 세월이 실로 아깝다.

갖가지 공사(公社)경영의 적자 심화속에 자기네 사람들로 채운 공공기관장들의 상식밖 고액연봉 잔치도 이 정권들어 생긴 폐해다. 생수 동업자 안희정부터 시작해서 청와대 적자(嫡子) 변양균 등에 이른 끊임없는 측근비리에도 자책을 보이지 않는 강심장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청와대서 나온 것도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북베트남 지도자 호찌민이 인민적 숭앙을 받았던 것은 인민과 의식주 생활을 똑같이 하면서 시범을 보인 청렴이 언제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정말 빈곤계층을 위한 지도자였다면 봉하마을의 사저가 신도시 규모인 것은 그래선 안 되는 일이어서 유감이다. 대중은 역시 그의 대중영합주의에 기만당했다는 생각을 이래서 떨치지 못하는지 모른다. 지방 아무데서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귀향이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낙향이다. 노무현의 화려한 낙향(落鄕)은 진정한 의미의 낙향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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