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의 ‘함정’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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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조선일보가 공모한 지방 주재기자 시험에 대졸 학력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통하다. 그전까지 고졸 학력으로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린상고만 나와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장기영씨가 사장으로 있던 한국일보만이었다. 나는 대학을 문턱만 걸치다 말았지만 대학중퇴는 학력이 아니다. 나의 학력은 고졸이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가 터진 이후 김옥랑 단국대 전 교수의 가짜 대학 학력이 드러나 학력 파문이 잇달고 있다. 놀라운 것은 ‘고졸교수’로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까지 하고 동숭아트센터 대표까지 지낸 사실이다. 학력을 속인 것이 문제이지 교수 실력은 있었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KBS라디오에서 성가를 떨쳤던 어느 영어 강사 역시 학력위조로 7년동안 이끈 프로그램을 도중하차 하긴 했지만 인기를 모았던 것은 그의 실력이다. 이들의 거짓 학력은 지탄받아 마땅하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기회를 잡지 않았으면 재능을 뿜지못했을 것이다. 이 역설을 어떻게 봐야할지 참 찜찜하다.

교육법은 고등학교의 목적을 ‘고등보통교육과 전문교육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대학교육은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학문을 공부하는 곳이 대학인 것이다. 학문에도 전공부문이 있다. 그런데 대학을 나와 전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대학을 나오기 위해 들어가기 좋은 학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대학에서 공부한 학문을 전공으로 평생 연구에 종사하며 국가사회에 공헌하는 이들도 있다.

임권택 영화감독은 고졸학력으로 대학 강단에 선다. 극작가이며 연극 연출가인 이윤택 시인 역시 고졸이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초등학교도 다니다 말았지만 생전에 받은 명예박사가 서 너개나 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덴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약 절반이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종식시킨 트루먼 대통령은 고등학교만 나왔다. 그러고 보니 국내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상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 출신의 고졸 대통령이다.

대학, 그것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좋다. 비록 대학에서 공부한 학문분야를 사회에 나와 종사하지 못할지라도 공부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실력을 학벌주의 위주로 보는데 있다.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감이 생기면 먼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고 묻는 게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요즘의 세태다. 대학은 당연히 나왔을 것으로 보고 어느 대학인 가를 묻는 것이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하면 교수를 안 시켜줄 것이므로 교수가 되기위해 학력위조를 한 것은 그렇다 해도, 학력위조는 일상의 생활에서도 많다. 맘에 든 배우자감을 놓치지 않기위해 안 나온 대학을 나왔다고 하거나 다른 엉뚱한 대학을 나왔다고 속이는 것도 학력위조다. 대학졸업을 사칭했다가 모처럼 당선된 지방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을 볼 땐 실소를 자아낸다.

일본에선 지금 나온 대학을 안 나온 걸로 학력위조를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많아 골머리를 썩히는 것으로 전한다. 요코하마시는 700여명, 오사카시의 경우는 1천140여명이 대졸학력을 고졸로 속여 공무원이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장기불황이던 때 고졸 취업을 넓히기 위해 대졸은 응시 제한을 한 바람에 이같은 학력의 하향 위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를 자진신고한 공무원에겐 1개월 정직과 함께 자원봉사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지만, 학력의 상향 위조만 보아온 시각으로는 그도 징계감인가 싶어 생소하다.

고등학교 시절은 평생 중 기억력이 가장 왕성하다. 나의 경우는 수학을 못해서 물리학도 싫었지만 예컨대 중력의 가속도를 구하는 ‘S=2분의1gt²’ 공식을 아직도 기억한다. 황산덕 서울대 교수의 ‘법철학’ 저서를 읽은 것도 고등학생 때다. 한국 및 세계 문학의 고전을 비롯해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 ‘이방인’ 등 근대 작품을 섭렵한 것도 그 때다. 공산주의 서적을 어렵게 구해 탐독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행 되지 못하고 학생들이 학과외의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대입지옥 때문이다. 물론 공교육의 정상화로 이를 고치긴 해야겠지만 대학 입시는 어차피 언제나 지옥이다.

세상 사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대학은 마땅히 존중돼야 하지만, 학벌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팽창되어서는 ‘대학이 뭐길래’하는 의문이 가능해진다. 또 이래서 생기는 학력위조는 자기 부정이다. 간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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