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방 주인이 5억원에 당첨된 즉석복권을 가로챘다고 주장하는 70대 할머니와 이를 반박하는 복권방 주인 중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일까?
할머니 입장에선 복권방 주인이 욕심부려 자신의 것을 가로챈 게 진실이고, 복권방 주인은 바빠 죽겠는데 3년 동안 어이없는 괴롭힘을 당한 게 진실이다. 흥미롭지만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은 오로지 그 둘만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건의 진짜 진실은 다른 데 있다. 각자가 다른 진실을 들고 와 한 명은 억울하다고 하고 한 명은 황당하다고 할 때, 진실은 억울함과 황당함의 차이를 좁히는 데 있다. 그것은 수사기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나태했다. 경찰은 당시 국내 복권발행기관 10곳 중 2군데에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아무도 당시 즉석복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할머니가 올림픽회관에서 본 것 같다는 말만 듣고 한 ‘전화수사’다. 검찰은 경찰보고서를 그대로 복사해 불기소이유라며 ‘우편배달’했다.
물론 이들이 게을렀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항변을 들어보면 사건은 수없이 밀려오는데 웬 소설같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할머니에게 신뢰도 가지 않았다. 둘 다 불러서 얘기를 듣다보니 시나브로 신빙성 없는 할머니로 결론이 난 것이다.
하지만 수사란 ‘못 믿겠으니 여기까지!’가 아니다. 할머니가 잘못 봤다면 5억원 짜리 즉석복권이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누가 수령했는지 확인하는 게 수사의 상식이다.
백만분의 하나, 할머니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할머니는 여생을 혼자만 억울하게 살아야 할 몫을 챙겼다. 복권방 주인 주장이 진실이라면 주인은 어물쩡한 수사 때문에 오랫 동안 ‘스트레스’라는 몫을 챙겼다.
억울한 할머니는 더 억울해졌고, 황당한 복권방 주인은 더 황당해졌다.
할머니나 복권방 주인 모두 수사에 불만을 터뜨리는 걸 보면 경찰과 검찰이 챙긴 몫이 무엇인지 분명해 보인다. 바로 ‘불신’이다.
임 성 준 sjlim@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