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역주행’

역주행이다. 대단한 역주행이다. 헌정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대통령 입에서 “그 놈…”이란 소릴 들은 헌법 경시 탓인지 헌법 정신이 실종돼간다.

청와대는 최고의 권부(權府)다. 최고의 권부 사람들이 헌법기구를 조롱한다. 중앙선관위를 비아냥거린다. 중앙선관위가 두 번째 경고한 대통령 노무현의 선거중립 위반 결정이 아무리 배알이 뒤틀리기로서니 그럴 순 없다. 입맛에 맞는 것은 법이 잘된 것이고, 입맛에 틀린 것은 법이 잘못이라는 논리는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못할 소리다.

청와대는 선관위 결정에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이냐”며 씩씩댔다. 누가 입을 봉하라고 했나, 할 말 안할 말을 가려 법에 위반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지, 벽창호도 아니면서 말귀를 왜곡하는 억지가 가히 대단하다. “발언 전에 일일이 선관위에 묻겠다”니 이는 또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린가, 어린애 말 투정도 아니고 양식이 의심스럽다.

선관위는 ‘행위’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해석하는 기관이지 ‘행위 예정’에 대해 심의해야 하는 의무는 갖지 않는다. 유권해석을 구하는 것도 어떤 구체적 의문 사실을 두고 말하는 것이지, 이런 말은 해서 안 되고 저런 말은 해도 괜찮느냐 등 말문을 묻거나 연설 원고를 사전 심의하는 것은 소임의 대상이 아니다. 글을 쓰다보니 말 같지 않은 말을 상대하려니 같이 유치해지는 생각이 들어 어쩌다 이런 저질에 이르렀나 싶다.

문제는 여기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대통령은 참으로 이상 야릇한 지시를 했다.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에 대해 정부 연구기관들이 타당성을 조사해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장관들이 제출하라”고 엄명했다. 특히 야당의 선거공약이 집중타가 될 게 뻔하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지, 정부기관이 부정적으로 결론 내린 공약을 몇 안 남은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하여금 국회에서 공격 대상으로 삼을 요량인 것이다. “대통령의 명령이니 그렇게 하라, 위법이 되지 않는다”고 까지 했으니 꽤나 시끄럽게 할 모양이다. 국민에게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지만, 세상에 집권 말기에 야당의 대선 공약을 도마위에 올리는 지능적 선거개입이 또 어디에 있겠나 싶다.

걱정되는 것은 멈출 줄 모르는 대통령의 역주행이 계속 충돌할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선관위에 미리 물어보든 안 물어보든 선거법 위반 시비의 사례가 더 나올 것은 분명하다.

만약 세 번째 경고처분을 받게 되면 참 난감한 게 있다. 한 경기에서 주심으로부터 옐로 카드를 세 번 받은 선수는 퇴장당한다. 그런데 대선을 두고 잇따라 세 번 경고처분 받아도 대통령을 퇴장시킬 수는 없고, 그렇다고 위반 사례가 또 나오면 묵과할 수도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고발해도 재직 중엔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 특권이 있으므로 당장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대통령은 모든 권력을 기술적 선거개입에 총동원할 태세가 역력하다. 그러면서 엄살을 피운다. ‘권력 없는 참여정부가 언론의 권력에 난도질 당한다’는 것은, 민심의 코너에 몰린 이 정권이 프로 레슬러가 코너에 몰려 엄살을 부리는거나 다름이 없다. 프로 레슬러는 엄살을 피우다가도 상대가 돌아서 틈을 주면 잽싸게 뒷덜미를 갈겨친다.

다스리는 자가 다스림을 받는 자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적 실력이 권력이다. 나라의 최고 권부가 권력을 무소불위(無所不爲)로 휘둘러 대면서 권력이 없다는 것도 난센스고, 언론이 무슨 권력이 있다는 것인지, 티끌만큼도 안 가진 권력을 가졌다고 우기는 강변도 엄살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체로 유명한 ‘국가’(國家) 등 30여편의 저서를 남겼다. “그런데 정말 우린 어리석었어.” “어째서요?” “글쎄, 이 사람아 그게 우리 발밑에서 처음부터 얼씬거리고 있었는데도 그걸 못보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지 뭐야!” ‘국가’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저서 ‘관행’(觀行)편에서 “관행이란 치자(治者)가 법치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모두 나라의 통치자를 일깨우는 계명이다.

청와대는 발밑에 얼씬거리는 그 뭣을 간파해야 한다. 법치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돌아봐야 할 시기다. 저돌성을 앞세운 법치의 역주행이 헌정 파괴를 넘어 쿠데타적이라는 소릴 듣는 일이 있을 것을 크게 염려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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