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이제는 조직화가 과제다

이 영 석 한국농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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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비준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합의내용이 밝혀지더라도 그의 해석을 놓고 큰 다툼이 벌어질 터인데, 합의내용의 공개를 놓고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이제 겨우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이 끝났을 뿐, 국내의 국민들과 여러 이해집단을 상대로 한 협상을 앞두고 각계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 정부는 여기에 더하여 EU, 캐나다 등과도 협상을 추진하여 FTA-전선(?)을 확대시켜나가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FTA를 앞이나 옆에서 뿐만이 아니라 높은 곳에 올라서 그의 진로를 미리 내려다보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당면한 과제를,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의 FTA가 어디로 어떻게 향하고 있는지를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시장을 넓히고 통합해왔고, 그 과정에서 발전을 이루기도 했고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장은 하나의 큰 시장으로 합쳐져 가고 있다. 농산물 시장도 마찬가지고, 그 방향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도도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 농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 시장일수록 큰 손의 장악력이 커지는데, 우리가 과연 ‘큰 손’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 아니면 큰 손들과 당당하게 거래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의 작은 꼬막손들이 장차 나름의 영역을 지켜나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 별로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큰 손에 대한 두려움’도 문제지만, ‘큰 손’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도 문제다.

우리는 일제와 6·25의 기아상태로부터, 통일계로 이름붙인 다수확 벼품종의 개발에 힘입은 1970~80년대의 녹색혁명을 통해서 주곡자급을 이뤄냈고, 1980~90년대의 백색혁명이라 불리는 비닐하우스 시설재배의 확산을 통해서 사시사철 거의 모든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농산물 부족보다는 음식물 쓰레기가 더 큰 문제가 되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동안 쌀 수확량은 60~70년대의 10a당 170~180㎏에서 이제는 500㎏에 이를 정도로 향상되었고, 이렇듯 우리 농업인들의 기술과 실력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시장이 커지고 ‘큰 손’들이 많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기술의 발달로 농산물의 공급이 소비를 크게 앞지르게 되면서, 이제는 농산물을 잘 만드는 것 보다는 잘 파는 것에 의하여 성패가 좌우되는 일이 갈수록 흔해지고 있다. 우리 농업의 승부가 논밭(농장)이 아니라 시장에서 좌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구나 ‘잘 만드는 기술’은 그의 확산과 기술진보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서 곧 평준화되어버리면서 기술의 수명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렇게 시장이 농장을 압도해가고 있는데도 우리 농업인들은 넓지 않은 내수시장에서 조차도 ‘잘 파는 것’에는 아직 서툴다. 우리 농업인들이 ‘잘 파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세계적인 큰 시장에서 놀던 ‘큰 손’들이 좁디좁은 우리 시장에 뛰어들게 되는 FTA와 WTO가 여기에 더해지면서 우리 농가들의 두려움과 상실감이 농촌의 공동(空洞)화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비를 절감하고, 고품질 농산물을 더 많이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농업경쟁력은 그보다는 ‘잘 파는 것’과 그래서 ‘농가들이 잘 살게 되는 것’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다. 농산물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도 필요하지만, 시장에서의 마케팅 경쟁력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마케팅의 장(場)인 시장이 통합되어 커졌고, 그래서 ‘큰 손’이 아니면 시장에서 별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농업인들은 어떻게든지 ‘큰 손’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비싼 땅값 때문에 우리 농가들이 각자 규모를 키워서 ‘큰 손’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럿이 뭉쳐서 하나의 ‘큰 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절실한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 시장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 우리도 넓어진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영 석 한국농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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