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를 들었으면 젓가락 아니면 포크를 들어야 한다. 한가지로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성찬일 것 같으면 더욱 그렇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은 몇 가지 고비와 보완할 일이 적잖게 남긴했으나 어차피 가야할 길이다. 중국도 일본도 협상을 갖자고 한다.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다. 남미 칠레와는 이미 협정을 체결했다.
엊그제 성남 SK텔레콤 액세스연구원 등을 찾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한은 FTA를 위한 탐색이다. 그는 “오늘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경제4단체 주최 오찬 간담회 시간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이다. 자유무역은 경쟁력이 생명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경쟁력 강화가 더 더욱 절박하다. 경쟁력이 살아나면 거의 무한한 이윤을 추구한다. 반면에 경쟁력을 상실하면 쪽박차는 손실을 가져온다. 경쟁력은 기업 활성화와 인재 양성 두 가지로 집약된다. FTA와 경쟁력은 수저와 젓가락 같은 관계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한미자유무역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뚝심은 알아줄만 하다. 그랬으면 이젠 경쟁력 강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무관심한 게 그런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경쟁력 저해 요인을 고집하는 것 역시 뚝심인 것은 정말 안타깝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나 출자총액제한제 같은 건 성장동력을 잠식한다. 자유무역으로 가면 기업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갖가지로 얽어놓은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주눅 든 아이가 바깥에 나가 기를 쓸 순 없다. 나쁜 버릇은 꾸중할 때 하더라도 기를 살려야 한다. 기업, 특히 대기업은 몸에 밴 나쁜 버릇이 있긴 있다. 편법 상속,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이밖에도 또 있다. 이런 버르장머리엔 매질을 하더라도, 경제질서의 기본인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최대한 살려줘야 하는 것이다.
때마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도판 ‘글로벌 경제에서의 도시 경쟁력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월드 스타, 내셔널 스타, 전환기의 도시 등 1·2·3 등급으로 구분했다. 런던·뉴욕·파리·도쿄·보스턴·밀라노·뮌헨 등은 월드 스타로 1등급에 올랐다. 서울은 전환기의 도시로 3등급이다. 즉 3류도시인 것이다. 런던 등 1급은 다국적 기업의 전초기지 등으로 분석된 반면에, 3급인 서울은 성장 엔진역할 미흡 등이 지적된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런던이나 파리, 도쿄는 수도다. 이의 글로벌 도시는 비단 수부도시에 국한하지 않는 수도권이다. 즉 서울이 3류인 것은 나라 경제의 심장과 같은 수도권 성장 엔진이 제대로 작동치 못하는 경제의 심장병 질환 탓이다.
문제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은 1982년에 제정된 법률이다. 산업사회의 굴뚝산업에 맞춰 만든 법률을 정보화시대의 지식산업에 적용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공장입지는 기업경영의 자유에 속하는 판단이다. 정부가 간여할 성격이 아니다. KOREA의 수출품이면 국내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든 수출효과는 온 국민의 것이다. 참다운 지방균형 발전은 되지도 않는 공장의 강제 배급이 아니다. 지역마다 갖는 특화산업을 개발하고 육성을 지원하는 것이 다양하고 조화로운 지방균형 발전인 것이다.
인재 배양은 당대만이 아닌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학생은 미래의 주역이며 학교는 잠재된 인재의 보고다. 하향평준화는 경쟁력을 저해, 영재를 범재로 만들기 십상이다. 경쟁력 박탈은 영재의 기회 박탈이다. 이토록 불공평해서는 인재 양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 명의 인재가 수만, 수십만 명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식산업이다.
수능·내신 등급화로는 점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대학이 수험생 능력을 변별코자 하는 것은 입시의 본질적 수단이다. 장차는 대학교육도 개방돼야 한다. 입시 등 대학의 학사관리에 정부가 시시콜콜 개입하는 것은 시류에 당치않다.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할 정부가 되레 훼방놓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상 타결을 성공시킨 대통령이 경쟁력의 요체인 기업규제 완화,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 고교등급제 및 대입 본고사 부활 등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은 이렇게 보아진다. 먹고 사는 문제를 나라 밖으로 보는덴 그의 말대로 이념에서 눈을 떴지만, 먹고 사는 문젤 나라 안으로 보는덴 아직 이념에 사로 잡혔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기득권층에 대한 원한이 풀리지 않아 그러는진 몰라도 그도 이젠 기득권, 신기득권층이다. 민중생활을 보는 시각이 닫힌 마음에서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보는 변화가 있길 기대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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