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달리 보였다는 세평은 많은 걸 생각케 한다. 지난 2일 한미자유무역(FTA) 협상 타결이 있었던 날 밤 9시50분께다. 노 대통령의 FTA 타결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본 세인의 반응이 대체로 그러했다.
평소 대통령을 달갑게 여기던 사람은 대국민 담화를 혹평하고, 달갑지않게 여겼던 사람들은 호평하는 경향이 많다. 세간의 반응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대통령 담화는 양쪽 반응이 다 그를 달리보는 계기가 된 것은 괄목할만하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원이나 재야 정치인이라면 누구보다 FTA를 앞장서 반대했을 사람이다. 민주당 당내 후보시절 영남대 특강에선 “반미면 어떠냐?”고까지 극언했다. 그랬던 그가 대미 FTA 협상 타결에 전례없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진보주의 성향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 운용을 책임지는 대통령 자리에 있다보니 그같은 판단이 절실했던 것으로 보는 촌탁이 가능하다. “FTA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먹고 사는 문제”라는 그의 말은 미래 지향적 절규다.
신랄한 비난이 쏟아졌다. ‘매국노’라고 했다. FTA는 미국 의회에서도 반대하는 측이 있다. 매국이란 당치않다. 일본은 자국의 미국 시장에 미칠 타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또한 충격을 받았다. 이웃 나라가 이런 걱정을 하는 매국노는 있을 수 없다. ‘서민경제를 망친다’고 했다. 서민경제를 말하자면 미국쌀을 개방하면 우리 쌀값보다 3분의 1이면 사먹을 수가 있다. 하지만 쌀은 제외됐다. 다른 시장바구니는 더 싸진다. 대신 예컨대 감귤을 개방했다. ‘광우병 쇠고기를 먹인다’고도 했다. 쇠고기 수입을 개방해도 검역은 별개의 문제다. 광우병 쇠고기란 무책임한 선동이다. 선동보단 제주 감귤보다 싼 미국산 감귤이 들어와도 제주 감귤을 살 줄도 아는 것이 애국 소비다. 척화비(斥和碑)는 흥선대원군이 내건 쇄국정책의 징표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개방으로 치달을 때 조선은 나라문 빗장을 굳게 닫아 걸었다. 자고로 국수주의가 잘된 나라는 역사에 없다.
예를들어 자동차 수출은 전략산업이다. 미국은 주력시장이다. 자동차 수출 증대는 국내 경제와 절대적 관계다. 여의치 못하면 대량 실업 등 도미노 파급 효과가 치명적이다. 현대판 국수주의자들이 이를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내친 김에 교육·의료 분야가 이번에 빠진 것은 유감이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이나 의료시설이 국내에 들어와야 한다. 이래야 국내 대학, 병원들이 정신을 차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자들도 굳이 현지에 안가도 되므로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거나 치료받을 경비가 절감된다.
물론 FT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게 마련이다. 희비가 엇갈리는 업종이 많다. 하지만 개방돼야 한다. 가장 취약산업인 농업 부문도 그렇다. 무작정 언제까지고 과보호만 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농민이 아닌 농업인에 의한 농업의 전문경영화 시대로 가야 된다. 예컨대 세분화된 전문 경영의 농업인들로 구성되는 대단위 기업이 앞으로 나와야 한다.
한미FTA협상 타결은 결론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 제기의 시작이다. 농업분야 지원을 비롯한 각 분야의 이해득실에 따른 손실보전, 그리고 대미 후속 대책 등도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의 과정에 흐렸다 개었다 하기가 숱해 난관이 겹치고 또 겹쳐도 어차피 가야할 길이다. 시련이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면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차세대를 위한 경제구조의 전진적 개편 선상에 서 있다.
기류가 기묘한 것은 정치권이다. 쉽게 말해서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좀 오른 모양이다. 이렇다 보니 FTA 협상 타결을 적극 지지했던 한나라당이 뜨끔한 것 같다. “꼼꼼히 따져 신중을 기하겠다”는 등 국회 비준을 두고 한발 물러서는 태세다. 꼼꼼히 따져야 하는 것은 말할 것 없다. 문제는 정략화다. 오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비준을 정략화 해서는 책임있는 공당의 면모가 아니다. 따지는 게 아니고 트집을 잡거나 시일을 일부러 질질 끌어선 대선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범여권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군웅이 할거하는 가운데 중구난방인 것은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점치는 눈치놀음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바탕인 다원화 사회에서 이유있는 반대는 마땅하다. 범여권에 할거하는 군웅들은 자신의 처신이 과연 이에 합치되는 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한미FTA 협상 타결은 대선과 유관해도 별개란 사실이다. 대통령의 결단은 평가된다. 그리고 대권 주자들이 표명하는 이의 찬반이 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겠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어디까지나 노무현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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