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열고… 편견 넘어 ‘세상속으로’
“일을 배우고 있을 땐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봄 기운이 완연한 지난 16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1층 직업적응훈련실.
‘너울가지(남과 잘 사귀는 솜씨 혹은 붙임성이란 의미의 순 우리말)까페’라는 작은 부제가 붙어 있는 훈련실 미닫이 문을 살며시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앞치마를 한 3명의 예비 직업인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인과 전혀 분간이 안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은 사실 모두 ‘정신지체 2급’이라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었다.
이날 이들의 교육을 맡은 김동숙 선생님(22·여·평택대 재활복지학과 4학년)의 카푸치노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3명의 훈련생들은 연방 “네”를 외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교육에 열중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정신지체’라는 장애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지한 훈련 모습에서,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뒷모습에서, 장애인을 대표해 희망의 빛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명감에서, 그저 단 한명의 예비 직업인의 모습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내일은 사회인” 꿈이 영그는 곳
지난해 9월 문을 연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지원팀내 행복작업장에는 정신지체, 발달장애 등 장애를 가지고 있는 18명의 장애인들이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쇼핑백 만들기 등의 기술 훈련과 대인관계 개선을 위한 사회적응 훈련 등 다양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맞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가운데 테스트를 통과해 대인관계 등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크게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3명의 친구들이 사회진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이곳 너울가지 까페에서 손님 응대, 간단한 음료만들기, 홀서빙 등의 훈련을 통해 막바지 사회적응 훈련에 한창이다.
김달호(25·정신지체 2급)·박연옥(27·여·정신지체 2급)·김동휘씨(20·정신지체 2급) 등이 바로 내일의 사회인을 꿈꾸며 이곳 까페에서 직업 및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
▲저마다 사연 안고 연습 또 연습
김달호씨는 아내와 두살배기 아들이 있는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런 그에게 이곳에서의 교육은 누구보다도 남다르다.
그래서 훈련도 가장 열심히 받고 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지체에서 오는 사회성 부족은 번번이 그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너울가지 까페에서 4개월여의 훈련끝에 찾아온 기회로 김씨는 지난 1월 D패밀리 레스토랑에 어렵게 입사했지만 전 시간의 직원이 교대를 해주지 않고 퇴근하는 바람에 탈의실에서 3시간가량 기다리다 출근 지연 등으로 결국 회사에서 퇴사당했다.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김한숙 직업지원팀장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해진 룰안에서만 행동한다는 것”이라며 “일반인의 경우 앞 근무자가 몇시간동안 교대를 해 주지 않으면 상황을 알아보려 할테지만 달호씨는 그저 교대를 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만의 룰을 지키려고 기다리다 결국 퇴사당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여전히 자신이 퇴사당한 것은 설거지를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일하는 게 즐겁다”면서도 “설거지는 정말 어렵다”는 말을 빼놓지 않아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지난 2월 수원 청명고 특수반을 졸업한 김동휘씨는 까페 생활을 가장 즐거워하고 있지만 남들 앞에만 서면 온몸을 떨며 긴장하는 바람에 번번이 취업면접에서 낙방하고 있다.
김씨는 “사람들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되지만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아직까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까페에서 열심히 배워 꼭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웃음지었다.
그리고 이곳 까페의 자칭·타칭 맏언니인 박연옥씨. 그녀에게 이제 까페에서의 훈련은 현실을 준비하는 예비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와 오는 5월에 입대하는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하기 때문.
박씨는 “빨리 돈 많이 모아서 집에 도움도 주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다”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더 많은 일자리 위해 노력 기울일 것”
매주 금요일 이들의 사회적응을 돕고 있는 김동숙씨는 “이들과 생활하는데 있어 한가지 일에 대해 3~4번 반복 학습해 주는 일 외에는 어려운 점이 없다”며 “오히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일을 장애인이니까 한다는 식의 사회적 편견이 더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김기태 관장은 “부모·형제가 언제까지나 보살펴 줄 수 없는 만큼 장애인들에게 훈련을 통해 직업을 갖도록 해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며 “이러한 면에서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장애인 재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관내 중소기업 등과 연계해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태기자 kkt@kgib.co.kr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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