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과욕’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을 구속하라”고 했다. 김영삼 정권 때 김대중 야당 총재는 국회에서 김현철 게이트를 대통령의 측근 비리로 몰아 붙였다. 결국 구속됐다. 양 김은 1960년대부터 구 민주당에서 정치인 생활을 같이 했다. 평생의 라이벌 관계는 서로의 정치적 성장에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재야를 망라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양 김은 친구 사이다.

어차피 사법처리될 친구의 아들을 구속하라고 목청 높였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신의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됐다. 이에 앞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엔 김영삼의 배려가 컸다. 1997년 대선에서 만약 이인제가 중도에 사퇴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인제가 얻은 약 500만표가 30만표 차이로 당락이 갈라진 김대중·이회창 두 후보에게 분산됐겠지만 이회창의 당선이 분명했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대통령 자리에 오른 김영삼은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김대중에게 대통령을 물려주고 싶은 인간적 연민의 정을 가졌던 것이다. 반대로 이회창에 대한 괘씸죄는 깊어져 정치적 양자인 이인제가 끝까지 버티는 것을 김영삼이 묵과했던 게 당시의 대선 판도다.

일설에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차기엔 이인제를 보장하는 김대중의 각서가 있었다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대선후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김대중의 민주당과 합당이 있긴 있었으나, 이인제는 합당의 막바지 시점에 국민신당 총재인 이만섭의 강력한 권고가 있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점에 비추어 홀로서기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는 설이 있었다.

어떻든 민주당의 차기로 꼽혔고, 경선에서 초반 승세를 탔던 이인제가 전남·광주지역 당내 경선에서 복병 노무현에게 대패하기 시작한 역전 쿠데타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게 된 배후는 김대중의 의중이 작용된 것으로 보는 눈이 유력하다. 중도우파, 대북 관계의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이인제가 김대중으로서는 미덥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남북 관계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나도 좋다”는 노무현의 말이 나온 게 이 무렵이다. 이인제의 청와대 면담 요청이 비서실장 박지원에게 철저하게 봉쇄된 것도 같은 무렵이다.

이인제의 얘길하려는 것이 아니고 김대중을 말하려다 보니 이인제 얘기가 빗대졌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한 김대중이 퇴임하고 나서도 킹 메이커 노릇을 하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범여권의 단합, 범여권의 단일화를 거듭 거듭 강조하며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나서더니, 엊그젠 의문의 방북 길에 찾은 전 국무총리 이해찬에게 역시 대선과 무관하지 않는 훈수를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둘째 아들 김홍업을 전 민주당 대표 한화갑이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한 전남 무안·신안 선거구의 4·25 보궐선거에 출마케 하는 것이다. 김홍업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범여권의 호남 결속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을 요량이라는 것이다.

김대중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96~97%의 호남 몰표가 나와 자신이 대통령이 됐고, 노무현을 대통령 시켰으면 이젠 그만 둘 때가 됐다. 세 번째로 또 한번의 몰표를 챙기려는 영향력이 먹힐지 안먹힐진 모르겠으나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직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참 볼썽사납다. 현직 대통령 노무현 역시 전직 대통령 김대중을 닮아서인지 퇴임 후에도 정치 활동을 하겠다지만 전직 대통령이 설 정규무대는 없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감놔라 배놔라’ 해가며 시시콜콜하게 나서는 것을 보기좋게 여길 국민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김대중이 현해탄에 수장될 뻔 했고, 감옥을 집처럼 드나들며 사형 선고를 몇 차례 받으면서 간곤하게 일관한 민주화 투쟁의 기여를 모를 사람은 없다. 아버지 바람에 큰 아들도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자유스럽지 못한 몸이 되고 둘째 아들 또한 고생한 사실도 다 안다.

주요한 것은 이렇기 때문에 김대중은 퇴임 후에도 정치를 하거나 선거에 개입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대중이 미련 갖는 남북 관계도 길을 열어 놨으면 닦는 것은 뒷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김대중과 그 일가는 이미 희생에 부응하는 대가를 받았다면 받았다 할 수가 있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허물이 없다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김대중이 이토록 원로의 한계를 일탈한 현실 정치 개입은 한나라당의 인재 빈곤과 정책 부재로 인해 우심하다. 한나라당은 탄력성 없는 자폐증에 걸린 채, 패거리 작당으로 미리 한 자리 얻을 줄서기에 바쁘지만 아니다. 지금 같은 거품 인기로는 오는 대선을 낙관하기 어렵다. 김대중을 견제하는 것도 한나라당의 역량이며 앞으로 나올 대선 후보의 경쟁력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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