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객’(감독 전윤수,제작 쇼이스트)의 제작진 리스트 안에 ‘음식감독’이라는 낯선 직함이 눈에 띈다.
20여년 경력의 한식요리전문가 김수진(51·푸드 앤 컬처코리아 원장)씨가 이 직함의 주인공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궁중음식 신을 맡았고,‘음란서생’에서도 음식과 궁중연회 장면을 총괄했던 김씨다. 하지만 본격 음식영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음식감독님’의 파워와 책임이 훨씬 세지고 무거워졌다고 한다.
“7월 말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제대로 잠을 못 잤습니다. 게다가 요리신 촬영 전날에는 밤샘을 해야 합니다.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날 오후 6시부터 식재료 준비에 들어가서 새벽 1시부터 조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통 20여가지의 요리를 한꺼번에 만들어야 하니까 잘 틈이 없지요.”
김 감독이 총괄하는 오종원 요리사(호텔 홀리데이인 서울주임) 등 20여 명에 이르는 푸드제작팀도 잠을 못자기는 마찬가지. 영화 ‘식객’은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본격 음식 영화. 조선조 궁중 최고 요리사였다는 대령숙수의 칼이 발견되면서 이 칼을 차지하기 위해 내로라 하는 전국의 최고의 요리사들이 경연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된장찌개·겉절이·계란말이 등 일상의 음식부터 섭산적·화양적·육회·황복회 등 고급 한식까지 어류·조류·육류 요리 70여 가지가 등장한다.
“음식재료 구입에만 3000만원 이상 들었습니다. 최고의 재료가 아니면 스크린에서도 금방 발각이 납니다. 또 영상으로 음식이 맛있어 보이려면 실제로도 맛이 있어야 합니다.”
식재료 구입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황복. 작품 속에서 ‘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맛’이라고 소개되는 황복회는 주인공들이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음식 과제다.
“4∼6월에 나오는 황복을 10월에 구하려니 있을 턱이 없죠. 그렇다고 황복을 참복으로 대체할 수는 없잖아요. 수소문 끝에 남해 어딘가에 깊은 바닷속에서 양식 중인 황복이 있다더군요. 아는 분이 도와주셔서 수백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그 열배를 주고도 구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김 감독은 촬영장의 도마 위에서 펄떡펄떡 춤을 추는 황복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간의 피로가 다 풀렸다고 한다.
“음식이 진짜로 맛이 있어야 배우들의 연기도 리얼하고 자연스러울 것 아닌가요. 그리고 음식 씹는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썼어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스크린 밖으로 음식 냄새가 풍겨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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