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31지방선거가 끝났다. 호남 몇 군데를 제외하곤 한나라당 싹쓸이로 끝났다. 앞으로 4년동안 보수색채가 짙은 단체장들이 대부분의 지방정부를 이끌어 가게 됐다. 거기다 지방의회마저 한나라당이 독식해 제대로 된 견제세력마저 없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제 투성이의 지방자치를 보수 색채의 한나라당이 독식을 했으니 결코 지방자치 앞날이 밝지 않을 것이다. 한 화가의 시름이 깊다.
우리나라에는 리(里) 단위 마을이 3만5천곳 정도 된다. 언젠가 이 난을 통해 말했듯 우리나라는 평면적은 미국이나 중국의 30 몇분의 1이나 주름진 산하를 쫙 편 표면적은 그 큰 나라들의 6분의 1 정도 된다고 한다. 그만큼 골짜기가 많고 따라서 마을이 많다는 이야기다. 마을들마다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문화 다양성에 관한한 문화강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사정은 다르다. 문화다양성은 점점 퇴색되고 농·어업을 기반으로 한 마을 공동체들은 점점 해체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는 일제 식민지와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시책 등으로 거의 획일화된 문화로 퇴행했으며 농·어업 기반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또한 요 근래 들어 농산물 개방 등으로 거의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앞에서 자치단체들을 언급했듯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의 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은 보수 색채의 한 정당이 독식하고 있으며 자치단체들 사이의 차별도 정치적인 이념의 스펙트럼도 없어 보인다. 자치단체가 그냥 제도로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4년마다 뽑을뿐이며 주민들의 자치와는 아무 상관없이 굴러갈 뿐이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도 노령화된 구성원들은 그저 일년 단위의 농사일에 습관적으로 매달려 있을뿐 마을의 미래에 대한 주민들 사이의 아무런 소통도 없다. 전체적으로 마을 공동체들은 꿈과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러한 마을들이 어떻게 하면 활력을 되살릴 수 있을까. 요즈음 행자부, 농림부, 환경부 등 정부 부처들과 문화연대, 지역재단 등 시민단체들이 나서 지역 활력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시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늦긴 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많은 지역과 관련된 계획들이 대부분 그 구체성이 결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역 현안에 대한 현황과 발전전략에 대한 대안들은 제시되고 있으나 이를 시행할 주체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가 결여됐다. 그 시안들이 구체화될 지역에 대한 단위 설정도 막연하다.
필자는 리(里) 단위의 마을 살리기만이 우리가 문화사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동안 생각했던 마을활력 프로젝트의 몇 가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이러한 마을프로젝트나 마을의 발전 마스터플랜 등을 만들기 위해선 마을의 민주적인 주민 조직들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마을 주민들의 총회에서 이같은 안에 대해 의논하고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 시행을 위임받아 처리할 자체 조직을 갖춰야 한다. 지금 현행 마을의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 같은 관 행정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는만큼 새로운 주도 조직을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두번째는 이처럼 위임받은 소 조직이 마을 생태환경과 주민들의 삶(전통건축물 구비문학 예술축제 민속 의·식문화 등)에 대한 꼼꼼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셋째, 이를 근거로 마을의 생태환경과 민속, 문화, 경관가치 등에 대한 보존 및 발전전략 등을 수립한다. 마지막으로 외부의 지원을 받을지 여부와 이러한 프로그램에 주민들의 참여 여부, 즉 주민들의 자발적인 교육과 훈련 등을 통해 모든 주민들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도록 한다.
아마 전국에 산재된 많은 마을들 중에는 필자같은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실제로 그 마을에 살고 이러한 마을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는 젊고 싱싱한 주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과 외부의 지원자들이 함께 공동 네트워크를 구성, 몇군데만이라도 시범사업으로 이러한 마을 살리기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빠르게 문화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김 정 헌 공주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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