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사업 수장의 ‘화려한 퇴장’ “도내 문화재 총괄기구 있어야”
“문화재 보존과 개발논리 가운데서 줄타기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이하 기문원)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장경호 원장(71).
그는 10만평의 파주 LCD단지와 조선 최대 왕실사찰인 양주 회암사지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현장을 발굴했고 매년 발굴사업 50여건을 진두 지휘했다. 7년여의 기문원 생활을 끝으로 사임한 장 원장을 만나 그동안 감회와 향후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평생 문화재와 떨어지지 않았던 그는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장과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문화재청에 있을 때만해도 문화재 보존에 더 비중을 뒀습니다. 한쪽에선 문화재 보존, 또 다른쪽에선 아파트나 산업단지 건설 등 발전부분을 주장했죠. 경기도에 내려와 실상을 대하니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부분도 쉽게 간과할 수 없더군요.”
파주 LCD 부지 발굴은 10만평이란 규모도 그렇지만 통상 겨울철에는 발굴을 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추진했다. 외자유치 등 사업성격을 감안해 용단을 내렸고 4천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작업을 진행했다. 문화재 역사와 함께 한 장 원장은 백제 무녕왕릉 발견의 단초를 제공했고 미륵사지 석탑 규모를 밝혀 내기도 했다.
“당시 고분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물막이 설계도를 작성하고 이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무녕왕릉 입구의 전돌이 걸리게 됐죠. 단순히 지하수 차단을 막으려 했던 게 백제의 혼이 담긴 무녕왕릉인 줄은 몰랐어요.”
그는 익산 미륵사지 동쪽에 위치했던 석탑의 층수를 밝혀냈다. 그는 석탑의 부재 260여개를 하나하나 꿰맞춰 9층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미술사학자 고유섭씨가 7층 높이라고 주장한 이래 학계는 이를 정설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때는 젊은 혈기도 있었지만 선배들의 주장을 후배가 뒤엎는 게 괘씸하게 여겨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재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가 재조사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도 9층으로 판명났죠.”
가장 보람된 일은 경기도박물관에 이어 두번째로 보존과학실을 만든 것. 수집한 유물을 과학적으로 처리하는 시설을 마련해 발굴과 보존을 함께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한가지 풀지 못한 건 도내 산재한 문화재를 총제적으로 발굴, 연구, 조사할 수 있는 가칭 ‘경기도 문화재 연구소’를 건립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현재 개발수요로 문화재 지표조사가 활발하지만 현 정부가 얘기하는 아파트 거품붕괴에 따른 건설경기 둔화 등이 현실화될 경우 발굴에만 의존하는 건 한계가 있죠. 도내 전통문화를 총괄하는 기구가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 원장은 수원 장안문 근처 기문원 자료실에서 전공인 전통건축물 등과 관련, 건물지 발굴에 대한 노하우를 담은 책을 엮을 예정이다. 한편 그동안 모은 장서 4천여권을 추려 일부는 기문원에 기증한다./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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