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식(39). 촐싹거리고 거드름을 피워도 왠지 밉지 않은 배우. 그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연기자 중 하나다. 지난해 첫 주연을 맡은 영화 ‘마파도’의 성공 이후 상영중인 ‘공필두’에 이어 ‘구타 유발자들’ ‘플라이 대디’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극과 영화만으로는 성이 안차 이번엔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TV로 시청자를 만난다. ‘다모’와 ‘죽도록 사랑해’에 조연으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드라마 주연은 이번이 처음. 그것도 연애와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 주인공이다.
‘연애시대’ 후속으로 방영되는 SBS ‘101번째 프러포즈’(윤영미 극본·장태유 연출)에서 그가 맡은 역은 외모 학벌 집안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고,심지어 나이도 많은 노총각 박달재. 그런 그가 여러모로 완벽해보이는 아나운서 한수정(박선영 분)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23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난 그는 연신 “시골출신이라서…. 이 몽타주(얼굴)에 뭘”하며 몸을 낮췄다.
“멜로는 처음이라 엄청 떨려요. 성격이 소심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프러포즈 해본 적도 없어요. 그냥 술마시고 “내가 남자로서 매력이 안 느껴지냐”고 슬쩍 물었다가 반응없으면 말고 그런 식이었지요. 지금도 방송국에서 예쁜 연기자 보면 가슴이 떨려 오랫동안 눈 마주치기도 힘들어요.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어쨌든….”
그는 자신에게 멜로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단다. “혹시 나한테 멜로가 들어와도 ‘노틀담의 꼽추’식의 비뚤어진 캐릭터려니 했어요. 이 몽타주에 이런 역할은 앞으로도 없을거고,그러니 해야겠다 싶었지요.”
무슨 얘기를 하든지 쑥쓰러워 죽겠다는 식으로 몸둘 바를 모른다. 서른여덟이 되도록 노총각인 극중 박달재의 모습이 그의 실제와도 많이 닮았단다. 인간 이문식 역시 서른 일곱이던 2003년에야 결혼했다. 지금이야 “이번 작품 하고 쉬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벼르는 아내와 아빠가 놀아주기만을 기다리는 두 아들이 있지만,그에게도 외롭고 고단했던 시절은 상당히 길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후미진 시골(전북 순창)에서 나서 1985년 처음 서울에 올라온 얘기,우여곡절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사연,1987년 시국이 어수선할때 시위대열에 동참해 삭발하고 혈서쓰던 얘기,군대 첫휴가때 7년사귄 애인에게 차여 죽네 사네 했던 소동,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가 연극하던 시절 연봉 1000만원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얘기 등을 주루룩 털어 놓았다. 예의 사람 좋은 웃음속에 밀항까지 상상하던 어려운 시절이 묻어났다.
“연극하던 시절엔 돈이 없어 1500원짜리 라면 먹으러 갔다가 2000원이면 못 먹고 올 정도였지만,지금은 얼마든지 먹어요. 예전엔 술 마시면 돈은 누가 내나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 안해요. 하지만 연기나 열정이 그때보다 나아졌는지는 단언 못해요. 그때는 연극자체가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가정도 생각하고 개런티도 신경써야하고요.”
이제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본다. “그게 굉장한 힘이자 부담이죠. 전성기요? 아니요. 이제 시작이죠. 5부 능선 정도 왔을까요. 하면 할수록 두렵네요.”
그러면서 얼마전 ‘다모폐인’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열쇠고리 얘기를 꺼낸다. “거기에 ‘초심’이라고 적혀있었어요. 그거 보고 뜨끔했지요. 나이들수록 타협하고 그러다가 그냥 그렇고 그런 배우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제 시작이라 말하는 이 나이든 배우는 타성에 젖거나 겉 멋이 드는 순간 바로 추락할 수도 있는 이 동네 생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줄 그의 연기가 궁금해졌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