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이 시대의 ‘민족’ 개념

약 600만명의 해외동포가 140여개국에서 살고 있다. 정부 자료에서 이같이 나타난 지역별 구성비는 다음과 같다. 중국 37.11%, 미국 34.46%, 일본 13.33%, 독립국가연합 8.82%, 중남미 1.72%, 아시아·태평양 1.66%, 캐나다 1.4%, 유럽 1.26%, 중동 0.18%, 아프리카 0.06% 등 순이다. 국내 거주자 4천600만명에 비해 13%가 해외에서 산다.

해외 이민동포 중에는 혼혈인 후손이 적잖다. 국내엔 주한 미군을 통한 흑·백인 혼혈인이 있고,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국인이 씨를 뿌린 ‘라이따이한’들이 있다. 국내엔 또 외국인 여성이 내국인 남성과 결혼해서 낳은 혼혈인들도 많다.

한(韓)민족은 시베리아에서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분포된 인종과 문화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융합하여 형성됐다. 역사적으로 상고해도 말갈, 거란, 여진 등 북방족들의 귀화가 있었고 이들의 혼혈인이 대동강을 넘어 한강 이남까지 남하했다.

중국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없애고 청천강 이남 등에 둔 한사군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폐한 것은 400여년 만이다. 국내 성씨 중엔 이밖에도 중국에서 망명해온 한(漢)족을 시조로하는 성씨가 많다. 고려 땐 몽고군의 7차에 걸친 침입으로 30년동안 이어지는 몽고항쟁이 있었고, 조선조에선 병자호란·임진왜란 등 장구한 전란을 겪었다. ‘배달’(倍達)은 상고시대의 나라 이름이다. 이런 상고시대적 배달민족의 순혈지상주의는 이제 신화로 보아야 한다.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해외입양은 전란이 끝난지 반세기가 넘도록 지금도 계속된다. 나라밖 양부모 슬하에서 장성한 한국인이 친부모를 찾기위해 홀트아동복지회를 찾는 수가 해마다 5천명에 이른다. 우린 우리나라 사람이 낳은 아이를 우리가 키우지 못해 남의 나라 양부모에 맡겨오고 있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순혈지상주의 주장은 난센스다.

민족의 절대적 개념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역할을 다 했다. 민족의 상대적 개념은 20세기로 끝났다. 21세기의 민족 개념은 다원화가 인정돼야 한다. 중국은 한족으로 대표되지만 소수족 등 50여 민족이 있다. 몽고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지배를 받았지만 이들 나라를 중국 역사로 친다. 미국은 말 그대로 지구촌의 인종시장이다. 영국, 프랑스에서도 흑인의 세가 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백호주의 또한 퇴색했다. 지구상의 심한 민족분쟁은 팔레스티나를 둘러싼 아랍과 유태민족 뿐이다.

국내에서 쓰는 민족의 단원적 개념은 두 가지 어폐가 있다. 첫째는 국민을 편 가른다. 대원군 때 처럼 나라의 대문을 빗장 걸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미래사회는 갈수록 개방된다. 민족지상주의가 아닌 국민지상주의 시대다. 민족의 복리가 아니라 국민의 복리를 말하는 시대다. 이미 다른 나라가 그런것처럼 우리도 이런 시대의 문턱에 이미 들어섰다.

또 하나의 어폐는 정치적 주술 용어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많이 쓰인다. ‘민족자조’, ‘민족공조’는 북측이 아주 좋아하는 상투적 언어다. “우리 일을 외세개입 없이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자”는 것은 듣기엔 썩 좋지만 신뢰를 상실한 함정이 있다. 그토록 민족을 말한다면 동족을 죽이는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 한다. 그토록 민족을 말하자면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 제의를 받아들였어야 한다. 그런데 평양에 간 그 분을 박대 해놓고는 전쟁을 일으켰다. 그땐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한다면 이야말로 남북간에 확실한 과거사 정리를 매듭짓고 나서 얘기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 옛날 배달의 순혈성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런대로 쓰였던 단원적 민족 개념이 다원화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추이다. 세상은 달라져가는 데 생각은 옛 생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갈등만 있을 뿐 발전은 없다. 한국계 NFL의 영웅 하인스 워드의 방한으로 혼혈인에 대한 편견이 좀 달라지긴 했다. 그는 혼혈인을 위한 국내 재단설립을 다짐하고 떠났다. 정치권에서는 ‘혼혈인차별금지법안’ 입안에 나섰다. 자칫하면 예의 반짝 관심에 그쳐 늦춰질 진 몰라도 결국은 입법화된다. 어떻든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것은 긍정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내 영주자격이 있으면서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은 지역주민의 자격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세상은 개개인의 편견에 상관없이 이렇게 달라져 간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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