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착한 채 하는 위선과 짐짓 악한 채 하는 위악의 반사회성 차이는 뭘까, 인간의 삶엔 때때로 두가지가 다 필요악의 공동선일 수가 있다.
여기선 위선을 예로 든다. 인격형 위선은 필요악의 공동선이다. 가령, 본심과 다른 어느 정도의 체면치레 겸손은 인간생활의 에티켓이다.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것도 인간생활에 필요한 예절이다. 자신을 위하면서 상대를 위한다. 위선의 폐악은 불손한 비인격형 위선에 있다. 자신만을 위하여 상대에겐 피해를 준다.
사회생활은 이런 인격형 위선과 비인격형 위선이 엇갈려 돌아가는 파노라마와 같다. 인격·비인격형 구분은 무슨 고매한 학식이 기준인 것은 아니다. 학식이 높은 사람도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많다. 학식이 옅은 사람도 사람다운 사람이 많다. 인격·비인격형은 사람이 사람다움에 따라 구분된다.
국회의원직 사퇴권고결의안이 제기된 최연희 의원의 예를 다시 든다. 그의 여기자 성추행은 순간적이다. 취기에 성적 충동을 느꼈다면 부교감 신경의 반응이다. 십계명으로 다스리지 않는한 이런 내재적 반응을 지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같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분출한 데 있다. 한 순간의 찰나였지만 그것은 인격형 위선자가 되지못한 비인격형 위선의 폐악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고, 사람답지 못한 행위는 이처럼 순간적으로 객관화 되는 것이 인간생활이다.
십년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된 지족 선사 역시 마찬가지다. 송도 송악산 암자에서 십년동안 면벽 참선한 지족 선사를 한 순간에 파계시킨 황진이의 유혹은 남성의 비인격형 위선에 대한 일종의 실험적 도전이었다. 황진이는 당대의 도학자 서화담에게도 같은 공세를 폈다. 여름철 비에 온 몸이 흠뻑 젖은 옷차림으로 두 남성의 품에 각기 뛰어 들었으나 서화담에겐 실패하고 지족 선사에게는 성공했다.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있다. 서화담은 속세에 있었고 지족 선사는 속세를 떠나 금욕생활을 한 차이가 있다고는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떻든 서화담은 자기 감정을 절제해 보인 반면에 지족 선사는 자기 감정을 절제치 못한 객관적 평가는 판이하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어 하노라’ 풍류시인 임백호가 뒷날 황진이 묘소에서 읊은 고시조다. 황진이의 그같은 실험적 도전은 남성 우월사회에 대한 항거였던 것이다.
인간의 품격 값어치가 높아진 현대사회는 전처럼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구에서 법조출입했을 때의 실화다. 각 검사 방마다 오전 오후로 두 차례씩 순회취재하는 것은 당시 법조 출입기자의 일과였다. 한 번은 같이 도는 기자 가운데 유별나게 더듬기를 좋아하는 동료가 있었다. 어느 방에 들르자 검사 앞에서 보온병을 따는 여성의 뒷모습을 본 그는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다짜고짜로 껴안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커피배달 나온 다방 종업원인 줄 알고 그랬지만 그게 아니다. 새파랗게 질린 여성은 남편의 한약을 집에서 가져온 검사 부인이었다. “여보! 인사하지”하면서 “제 집사람이다”라는 말로 검사 남편은 재빠르게 좌중을 관대히 수습했지만 동료의 황당무례함에 같이간 사람들조차 무안하여 얼굴이 달아 올랐다.
아득한 이 옛 얘기를 하는 덴 이유가 있다. 그 무렵은 다방 종업원이었을 것 같으면 으레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 사회통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방 종업원일 지라도 성추행으로 처벌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통념이다. 그 친구는 백배사죄하고 끝났지만 지금 같으면 현행범으로 체포될만 하다.
국회의원직 사퇴권고안이 나오도록 사퇴를 거부하는 최연희 의원은 옛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남자가 술먹고 뭣,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그만한 일로 그만 두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보는 구시대 인식이 아직도 몸에 밴 것 같다. 그러면서 ‘안그런 남자 있으면 나와 보라!’는 행티로 보인다. 착각이다. 장합이란 것도 있다.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최 의원 안건을 두고 여성 의원들은 기명투표를 추진하는 데 비해 일부 남성 의원은 난색을 보인다는 소식이다. 국회법상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 비밀투표가 원칙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못하는 범부들도 이성에 공동선의 위선을 가질 줄 아는데, 명색이 국회의원이 공동악의 폐악을 저지르고도 버티는 강심장이 정말 대단하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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