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은 장발단속과 대마초 파동으로 그룹사운드가 급격히 와해되던 77년대에 등장했다. 당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그는 이후 10여년간 '아파트'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상급 인기가수로 군림하게 된다.
그 계기는 바로 경연대회 입상과 데뷔 음반 녹음이었다. 이 신인의 음반 타이틀 곡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공전의 빅히트를 기록하며 윤수일에게 78년 MBC 최고 인기가요상 수상을 비롯해 MBC와 TBC의 10대·7대 가수상을 안겨 주었다.
그의 성공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더불어, 트로트 선율과 록 스타일의 사운드를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 고고'(트로트에 고고리듬을 접목)가 가요계에 몰아닥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윤수일의 창법 역시 트로트에 충실하지만, 여기에 리드미컬한 템포와 그루브(특히 첫째·셋째박을 강조하는 베이스 기타), 이를 적절히 수식하는 전기 기타 연주를 결합했고 이것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것이었다.
자칫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트로트 고고가 대중적 공감을 얻으며 히트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렇듯 '그룹의 사운드와 트로트 선율'이란 신구(新舊) 감성의 결합을 시도한 그의 실험적인 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유람선 쇼케이스
은은한 오렌지색 불빛의 원효대교와 파도빛 푸른색의 마포대교가 한강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중간에 오롯이 떠있는 한강 유람선은 25일 특별한 밤을 맞았다. 바로 7년 만에 가요계에 컴백하는 가수 윤수일이 이곳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가진 것이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한 후 '아파트'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아름다워' 등 록풍의 '시티뮤직'으로 가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이번에는 친환경적인 '웰빙뮤직'이라는 컨셉트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색적으로 한강 유람선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것도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자유를 느껴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무대가 마련된 유람선 안은 그를 보고 싶어하는 300여명의 지인과 팬으로 메워졌고, 화려한 불빛을 발하는 강변의 마천루와 줄지어 있는 한강변 차량도 숨죽이며 그의 공연을 기다리는 듯했다.
잠시 후 윤수일의 20년 친구인 왕종근 아나운서가 무대로 나와 "멋있는 남자라는 표현보다 멋있는 사내가 어울리는 주인공"이라고 그를 소개하자 두건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코디한 윤수일이 자신의 백밴드 사이로 걸어 나온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마친 그는 어쿠스틱 기타를 어깨에 메고 타이틀 곡 '숲바다 섬마을'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토해낸다.
"숲에서 살고 싶네∼숲에서 삶을 살고 싶네∼" 목가적인 가사와는 달리 강렬함과 순수함이 어우러진 빠른 컨트리 풍의 리듬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노래는 콘크리트 생활에 숨막혀 하는 도시인들이 숲과 바다와 섬이 있는 마을을 동경하는 심리적 상황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한 곡이다.
이어 발라드곡 '네버 세이 굿바이'와 '문라잇'이 한강의 물살을 고요하게 가르고 있는 유람선에 리듬을 맞춘 듯 유유하게 흘러갔고, 이내 강한 록비트의 '떠나지 마'가 뒤를 잇자 유람선은 젊은이들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뜨거운 열기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것은 귀에 익은 '제2의 고향'이 흘러 나오면서부터. 강렬한 비트 사운드로 인해 온몸에 짜릿하게 전율이 느껴진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국민가요 '아파트'를 열창할 때다. 이 곡을 리바이벌한 가수 김건모가 참석해 선후배가 함께 하는 훈훈한 무대를 선사했고,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막대를 흔들며 무대와 하나되는 열정을 뿜어냈다.
# 인터뷰
"오늘 공연은 60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음향과 조명은 선상이다 보니 미비한 반면, 노래와 연주는 최고였다는 점에서 그렇게 점수를 주고 싶어요."
7년 만의 컴백무대를 이색적으로 한강 유람선에서 가진 윤수일은 1시간의 짧은 약식공연이었지만 공연을 찾은 300여명의 지인과 팬들에게 강하고 긴 여운을 남겼다. 윤수일 또한 "오랜만의 공연을 많은 기대와 호응 속에 열정적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감격에 겨운 듯했다. 77년 밴드 가수로 데뷔한 후 솔로로 활동해 온 그는 이제 다시 5명의 뮤지션으로 구성된 '윤수일 밴드'로 제2의 탄생을 알렸다.
그는 7년의 공백기간 중 4년간은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한때는 음반제작, 유통, 아카데미 등의 성공으로 사업의 매력에 심취했고,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경기도 파주에서 두문불출하며 2년여의 시간을 이번 앨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웰빙을 컨셉트로 한 21번째 앨범이 탄생했다.
"환경이 중요해요. 작곡을 어디서 하느냐가 곡의 성격을 나타내죠. 이젠 주5일 근무제가 대부분이고, 웰빙시대인 만큼 음악도 도시화, 정형화를 탈피해 목가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윤수일 밴드는 그와 30년 이상 음악을 같이 해온 박성호 리더를 포함한 5명의 뮤지션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비틀스는 없어지고 기억속에만 존재하지만, 자신들은 롤링스톤즈와 본조비처럼 가수와 뮤지션은 같이간다는 생각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윤수일은 앞으로 방송활동도 활발하게 할 생각이다. 다만 밴드 성격을 잘 표현해낼 프로그램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다.
"보여주거나 들려줄 수 있는 곳이라면 TV든 라디오든 가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주무대는 콘서트가 되겠죠."
# 이번 앨범은…록비트-어쿠스틱 사운드 버무려, 선동적 분위기 가득한 10곡 수록
이번 앨범은 '윤수일 밴드'의 강한 록비트와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적절히 조화시켜 윤수일 특유의 선동적인 분위기와 듣는 이를 흥분시키는 리듬으로, 함께 따라 부르고 춤을 즐길 수 있는 곡으로 구성됐다.
'네버 세이 굿바이' '만추' '인생의 강' 등 총 10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타이틀곡에 못지않은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 곡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숲바다 섬마을'은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에 흠뻑 취하여 만들어진 곡이다.
음악녹음은 자신의 스튜디오(Cynic)에서 밴드멤버의 실제 연주와 '시켄싱 작업'(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적절히 혼합하여 라이브적인 사운드와 섬세하고 정확한 디지털적인 면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번 쇼케이스를 시점으로 4월부터는 파주에서 출발해 '어린이 난치병 돕기 윤수일 밴드 전국 투어'의 일정에 들어간다. 윤수일은 이번 앨범과 공연의 수익금은 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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