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철도 민영화 재고해야

필자가 대학교에 다니던 80년대 후반만 해도 기차는 추억 만들기의 단골메뉴였다. 부산행 밤샘 기차, 춘천행 기차 등은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꼭 한 번은 타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낭만의 대상이던 철도가 이제는 유전사업비리, 파업 등으로 만인의 지탄을 받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민영화가 핵심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과거 철도청은 KT&G의 전신인 전매청과 함께 대표적인 정부부처형 공기업이었다. 그러다가 전매청이 먼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거쳐 오늘날 해외자본의 인수위기에 직면한 주식회사 형태로 완전민영화 되었고, 철도청도 05년부터 한국철도공사로 변화되어 전매청과 같은 민영화 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란 해당기업에서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기업성, 즉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투자액을 줄이고 대신 민간인들의 투자를 받아들인다. 물론 투자액에 상응하여 민간부문의 경영참여 지분도 커진다.

그러면 왜 민영화가 유전사업투자와 철도파업 같은 문제들을 초래하는가. 바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경영진의 노력 때문이다. 공기업은 민영화되면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경영진은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좀 더 상세히 보자. 유전사업 비리의 핵심인 김세호 전 철도청장의 임기는 03년 2월부터 04년 8월까지다. 이 시기는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철도청 민영화 논의가 거의 민영화로 가닥을 잡은 시점이다.

평생 공무원으로 근무해 차관급인 철도청장까지 오른 사람이 왜 철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전사업과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었을까. 아마도 돈 좀 벌어서 새로 출범하는 철도공사의 재무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철도청의 부채비율은 03년 19%에서 04년 78%로 급증한다. 부채는 4조5천억원에서 4조8천억원으로 약간 증가했을 뿐이지만, 자본은 24조2천억원에서 6조 2천억원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영화 준비조치를 취한 결과 자본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부채비율이 감소해도 시원찮을 판에 몇 배나 증가했으니 기관장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문제는 공사로 전환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번 파업에서 노조가 내건 요구사항들 중에는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요금할인 축소 철폐, 적자노선 폐지 철폐, 비정규직 및 계약직 차별 철폐, 신규인력 3,200명 충원 등이 있다. 이 사항들을 보면 공사로 전환된 이후 철도공사가 경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소위 ‘돈이 안 되는’ 혹은 ‘돈 버는데 저해가 되는’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히 제거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정부는 왜 철도사업을 민영화하려고 하는가.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그것이 시대 추세이기 때문이다. 민영화 모델을 세계에 수출한 영국에서도 철도가 민영화되었고,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서도 민영화하면 생산성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영국은 해마다 몇 건씩 철도사고를 경험하고 있다. 민영화 이후 모두 300명 가량이 철도사고로 사망했다. 99년에는 패딩턴 역 부근에서 열차가 충돌하여 한 번에 3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사고원인은 다소 황당했다. 선로 신호등 램프가 고장 났는데 해당 철도회사가 돈을 아끼려고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철도 민영화의 현실이다. 돈 몇 푼 아끼려다 아침에 출근하던 무고한 시민들을 다치고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조건 민영화를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될 분야가 있다는 말이다. 한 번의 사고로 인명이 대량으로 손실되거나 피해액이 엄청나 민영화로 확보한 절약분을 모두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는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철도가 바로 그런 분야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하 태 수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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