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지 상인이 도·소매업을 하다가 망하고 나서 할수 없이 법원에 파산선고 신청을 냈다. 이윽고 면책결정을 받고 나선 “노무현이 이런 것(면책결정)을 둔 것 하나는 잘 했다”고 말했다. 뭣 한 가지 제대로 되는 장사가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이 정부의 높은 이들은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하는 데 시중 서민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바닥을 긴다. ‘면책결정’은 갚을 수 없는 빚을 합법적으로 떼어먹는 빚잔치다.
그 옷가지 상인은 당장 빚더미 귀신으로부터 풀린 게 우선 살것 같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장사가 안 되어 망한 것이 전례없는 경기불황탓인 것을 염두에 두고도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민법상의 파산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왜 ‘면책결정’을 이 정권이 둔 것으로 착각했을까, 망하지 않으면 알 필요가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파산 신청이 불티난 것은 이 정권 들어서다. 전엔 이에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법원에 줄을 대고 있다. 법원마다 담당 판사들이 심리에 쫓길 정도로 신청이 폭주하고 ‘면책결정’ 공고가 범람한다. ‘면책결정’이 나면 채권이 법익의 우산에서 밀려나는 피해자가 생긴다. 면책된 사람에게 돈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또 그가 제3자에게 줄 채무 이행에까지 지장이 연쇄적으로 파급된다. 기막히는 현상이다.
서민층은 이토록 살기가 어려운 데 정부 발표는 언제나 장밋빛이다. 예컨대 한국은행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 증가율은 1분기 4.9%에서 2분기엔 1.7%로 뚝 떨어졌는 데도, 정부는 제조업 생산이 7.2% 증가했다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체감경기와 동떨어진 정부의 경제지표 발표는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백성들 살림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라 살림 또한 엉망이다. 이 정권의 누적된 적자예산 편성은 재원마련을 위한 적자국채 등의 무분별한 발행으로 나라 빚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당장 올 연말이면 지난해 246조원이던 국가채무가 국민 1인당 66만원 꼴인 279조원으로 13%(33조원)나 늘어날 전망이다. 세금은 세금대로 짜내면서 이 모양새로 나라 살림을 외상으로 꾸려간다. 이런 가운데 정부기구는 비만형이 되어가고, 사회복지 시책은 수치 통계를 위한 나열식일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은 별로 찾을 길이 없다. 그러면서 말로는 온갖 큰 소린 다 친다.
‘자주국방’을 예로 든다. ‘자주국방’이야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원론적으로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돈이다. 2020년까지의 자주국방을 위한 국방개혁에 무려 623조원이 소요된다. (윤광웅 국방의 말) 한데, 구체적 예산 확보방안은 무대책이다. 구호일 뿐 현실성이 없다. 이런 국방개혁을 두고 언필칭 ‘자주국방’을 내세워 한·미동맹의 경제적 효과를 해친다.
백성들 살림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이상하게 사회불안까지 조성하는 것이 이 정권이다. 교과서만 해도 그렇다. 남쪽은 장기집권·부정부패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북쪽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주체사상 등을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남쪽의 새마을운동은 깎아 내리고 북쪽의 천리마운동은 추켜 세웠다.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우리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지 의심스럽다.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한 교수란 사람이 되레 큰 소리치는 세상이 됐다.
개혁은 개혁의 주체가 먼저 도덕성을 갖춰야 탄력을 받는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 삼성에서 받은 7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쓴 것은 당연시하고, 청와대가 누구 사돈의 음주운전을 무마키 위한 경찰수사 개입설이 나온 것에 무감각해서는 개혁의 도덕성을 갖췄다 할 수 없다. 나라 안 권력층이라는 권력층에 손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윤상림 게이트’는 또 뭔가, 이해찬 국무총리가 총리가 되고 나선 그와 골프를 친적이 없다고 한 말이 되레 괴이하다.
개혁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권을 겪은 3년은 국정 전반에 구악은 구악대로 답습하면서 구악 뺨치는 신악이 판친다. 개혁은 이미 물건너 갔다. 자기 눈의 눈엣가시는 손으로 가리며, 남의 눈엣가시는 손가락을 후벼넣어 파내려 든다. 비록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안 주었던 사람들도, 기왕 됐으면 잘 해주기를 바랐던 기대가 무산된 건 나라의 불행이다.
이 정권은 언젠간 또 한 번의 깜짝쇼를 벌이겠지만 면역이 된 국민사회는 무덤덤하다. 처 자식들 데리고 먹고 살기에 바쁜 것이 이 정권치하의 서민층이다. “노무현이 ‘면책결정’을 둔 건 잘 한 것”이란 착각, 그것은 아들이 불난 집을 가리키자 “아버지 덕에 우린 저런 걱정없다”고 했다는 잘 난 거지 아버지의 부자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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