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는 사실,이젠 다들 안다. 대신 ‘왕자님’은 TV 드라마에 있고 하이틴 로맨스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 아마도 10대에서 20대초반,혹은 아직 사랑의 환상을 갖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까지도 커버할 수 있을 것같은 유치찬란하고 뽀샤시한 영화 한 편이 나왔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이 바로 그것.
지난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식이 현빈이 백만장자 왕자님으로 나온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속마음 얘기 못하고 오히려 거들먹거리지만 결국은 순정을 보여주는 삼식이와 비슷한 캐릭터다. 드라마에 이어 이번에도 호텔 상속자인 것은 우연일까?
주민등록증만 나오면 천억원대 유산을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강재경(현빈). 아쉬운 것없이 자라온 까닭에 성질은 못 됐고,심심하면 패싸움에 고등학교는 자퇴. 드디어 유산이 집행되는 날 할아버지의 유언장엔 뜻밖에도 강원도의 한 시골고교를 졸업해야만 상속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결국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이곳은 ‘선생 김봉두’에서 봤던 그런 마을이다.
‘웰컴 투 동막골’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동네 주민들에게 뇌물이나 협박은 안 통한다. 재경의 눈엔 1만원짜리 한 두장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동네다. 그리고 마지못해 다니는 이 학교에서 자꾸만 한 아이가 눈에 들어 온다. 최은환(이연희). 돈 많은 자신에게 기죽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려드는 은환에게 마음이 간다.
이쯤되면 그 이후의 일은 상상가능. ‘가을동화’ ‘내 이름은 김삼순’ 등 트렌디 드라마 좀 봤다는 시청자들의 상상을 뛰어 넘지 못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재경은 돈은 많지만 누구보다 외롭고 어린시절 뭔가 아픈 기억이 있어 비뚤게 커왔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받는다는 설정은 어릴적 부모를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여주인공은 또 어떤가. 가난하지만 착하고 예쁜 여주인공은 불치병에 걸릴 것이며,이 사실을 숨기다가 어느 순간 남자가 알게 되고,이제 막 좋아하게 된 두 남녀는 가슴아프게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화면은 기본일테고.
역시나.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한줄기 흐르는 눈물조차 아름답게 잡아냈던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백만장자의 호사스러움과 첫사랑의 아련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잡아내는데 공을 들였다. 현빈은 초반 거침없는 반항아에서 점점 한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넓은 창마다 노을이 지는 집에서 살고 싶은 은환 역의 이연희는 신인 답지 않는 눈물연기를 펼친다. 현빈을 보고 극장을 찾았다가 이연희를 발견하고 나오는 기분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100% 빠져들려면 왜 아름다운 사랑은 마지막 순간에만 오는 것이며,왕자님은 해줄 것 다해주고서도 “아무 것도 못해줘 미안하다”고 말하는지 묻지말 것. 그저 현빈의 수려한 외모와 이연희의 예쁜 얼굴에 취해 첫사랑의 판타지를 느껴보길. 단 평소 이런 감상적인 이야기를 한심하다고 생각해왔거나 하품만 하던 관객이라면 바로 수면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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