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 극
장동건 무극’봄바람 탈까
천카이거 감독. 영화 팬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보지 않은 이 없고, 영화 배우라면 한 번쯤 그와 같이 작업하고 싶을 정도로 세계 영화계에 명성이 자자한 스타 감독이다.
장동건. 누가 뭐래도 어느덧 한국 영화계의 대표 주자가 돼 있다. 그는 한국 배우를 넘어 아시아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런 둘이 만났다.
더구나 일본의 대표 선수인 사나다 히로유키와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여배우 장바이즈까지 가세했으니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정도의 진용이다.
그러나 고개가 갸웃해진다. 운명의 판타지는 컴퓨터 그래픽이 눈에 잡힐 정도인 화면 속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드라마는 깊숙한 갈등을 유발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연결 고리로만 힘겹게 엮인다. 한국 관객과 중국 관객 취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게 이 영화를 통해 새삼 확인된다. 한국 관객은 중국이나 일본 등과 달리 탄탄한 드라마 구조를 원한다. 중국에선 개봉 첫날 ‘타이타닉’을 제치고 최고 흥행 기록을 다시 썼지만 한국에선 얼마나 먹힐지 모를 일이다.
헐벗고 굶주린 꼬마 칭청(장바이즈 분)은 빵을 얻기 위해 시체를 뒤진다. 운명의 여신은 칭청에게 천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천하의 권력과 금은보화를 주지만 사랑은 얻지 못하게 한다. 쿤룬(장동건 분)은 자신이 언제부터 노예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빛보다 빠른 발로 무작정 뛰며 전쟁터에서 주인을 구할 뿐이다. 그가 모시게 된 새 주인은 그의 빠른 발을 눈여겨본 대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 분). 쿠앙민은 자신만큼이나 끝없는 야심을 가진 북공작(셰팅펑 분)의 위협으로부터 왕을 구하기 위해 성을 향해 가다 예기치 않은 습격을 받는다.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붉은 갑옷을 쿤룬에게 입힌 채 왕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대장군 옷을 입은 쿤룬은 칭청을 구하기 위해 왕을 죽인다. 칭청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폭포까지 뛰어든 대장군에게 사랑을 느낀다. 북공작을 호위하는 자객에게서 자신이 설국 출신임을 알게 된 쿤룬은 자신의 운명과 맞서 칭청의 사랑을 얻으려 한다. 그리 복잡한 설정이 아니라 중국에 비해 30분 짧게 소개되는 한국에서도 영화가 주고자 하는 뜻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나 영화 초반 장동건 스스로 “한국 관객은 충격적일 것”이라고 표현했던 쿤룬의 달리는 모습이 생경하듯, 단순한 주제가 시종 운명이란 무거운 주제로 표현되는 ‘무극’의 영화 기법 역시 생경하긴 마찬가지다. 12세 이상 관람가.
● 백만장자의 첫사랑
유치찬란해도 현빈 있기에…
주의사항. 소녀적 판타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수면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가 타깃으로 삼은 10대 관객은 눈에 하트를 그리며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10대가 꿈꾸는 유치찬란하면서도 동화처럼 예쁜 사랑이 딱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인공이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꽃미남이나 꽃미녀이니 구색은 제대로 갖췄다. 신예 이연희는 포스터나 예고편에선 현빈에 가려져 있지만 화면에선 마치 감춰진 진주가 드러나듯 어여쁨을 뽐낸다.
자고로 10대는 땅에 발을 붙이고 다니지 못하는 나이. 몇㎝ 정도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이들(특히 소년보다는 소녀)에게 이 영화는 맞춤 옷같은 즐거움을 줄듯하다.
일단 설정이 황당하다. 고3 재경(현빈 분)은 할아버지의 유산 상속으로 통장에 12자리 숫자의 돈(천억대)이 들어 있는 백만장자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게 없어 제멋대로 살아가는 대책 없이 건방진 캐릭터.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니, 할아버지가 지정한 시골 고교에서 졸업장을 따야만 유산이 상속된다는 것이다. 졸업 때까지 대충 버티자는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온 재경은 적응할 생각은 커녕 여전히 멋대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 순간부터 똘똘하고 생활력 강한 동급생 은환(이연희 분)이 마음 속에 들어와 앉는다. 재경을 유일하게 제동거는 인물로 고아지만 씩씩하고 밝다.
‘파리의 연인’ 김은숙 작가,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 아래 드러나는 강동원 얼굴에서 광채를 뽑아낸 김태균 감독은 이번에도 현빈과 이연희를 포토샵처리한듯 대단히 뽀얗게 그렸다. 여기서 멜로영화 법칙 하나. 남녀 주인공이 예쁘면 감정의 비약과 상황의 어설픔은 상당 부분 가려진다. ‘투사부일체’가 웃고 싶은 관객들을 끌어모았듯, ‘백만장자의 첫사랑’이 순정만화에 풍덩 빠지고 싶은 관객들을 유혹할지 주목된다. 오는 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프랑수아 오종의 ‘타임 투 리브’
인생의 종착역 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나
세상이 자기 없이도 돌아감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것.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선 하나 더 있다. 종족 보존 본능이다. 나 대신 세상을 살아갈 분신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다. 자식과의 이별도 슬프지만 그럴 자식이 없다는 것 역시 만만찮은 슬픔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젊고 잘생긴 유능한 패션 사진작가 로맹(멜빌 푸포 분)은 어느날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부족할 것 없고 아쉬울 것 없는 그이지만 시간 앞에선 무력해진다. 남은 시간은 불과 2~3개월. 그는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애인에게도 죽음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는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과 같다. 죽음을 부정하고 슬퍼하다 결국은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한편의 서정시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8명의 여인들’이나 ‘스위밍 풀’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럼으로써 시냇물이 아니라 얼음 밑에서 콸콸 흐르는 강물을 화면에 펼쳐놓았다.
로맹은 게이다. 남자 애인과 격렬한 섹스를 즐기지만 자손을 남길 순 없다. 암 선고를 받은 후 애인을 떠나보낸 로맹은 “꿈에서 무차별적 섹스를 즐긴다”고 의사에게 고백한다. 왜일까. 그런 그에게 카페의 여급이 기막힌 제안을 한다. 남편이 불임이라 로맹에게서 씨를 받고 싶다는 것. “아이가 싫다”고 거절했던 로맹은 그러나 결국 그 여자를 찾아간다.
여기서 오종은 섹스의 근원적 목적이 종족 보존임을 강조하며 그 행위에 내포된 비장함을 표현하려 했다. 이처럼 강렬한 장치는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로맹의 남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그의 부모가 불화를 겪고 있는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호기심만 자극하고 답을 주진 않았다. 그래서 황당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애잔하나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 그저 석양을 배경으로 해변에 누워 한줄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고 해도 말이다. 오는 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img5,l,000}● 작지만 큰 영화…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
10대 커플 브뤼노와 소니아는 불장난 끝에 아기 지미를 낳는다. 그러나 둘은 육아와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소매치기로 연명하는 브뤼노는 급기야 지미를 팔아버리고 하는말 “또 낳으면 되잖아”다. ‘더 차일드’는 ‘로제타’(1999년)에 이어 벨기에 다르덴 형제 감독에게 두 번째로 칸의 황금종려상을 안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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