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임대아파트 거주자의 예금 통장에 수억원이 예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 그들 가운데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리 생소한 것만은 아니어서 사회문제화가 되곤 한다. 개인의 소유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문제될 건 없지만 사회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 보기에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건 뭔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분명하다.
지난 8월 잠시 영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화제가 됐던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란 베버리지 보고서로 유명한 영국의 어느 가정이 현재 받고 있는 복지실태를 보도록 하자. 전제를 하자면 일반적 현상은 아니고 극단적 사례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41세 부인인 마가렛(Margaret)과 34세인 에릭(Eric) 사이에는 마가렛이 전 남편과 낳은 아이 4명을 포함해 자녀 15명이 있다. 마가렛이 에릭과 13년간 사는 동안 11명의 자녀를 뒀으니 거의 해마다 아이를 가진 셈이다. 마가렛이 최근에도 임신했다 유산하는 등 통산 7번 유산했다고 한다. 이들 가정에는 매년 1억원 정도 생계비가 자녀 세액 공제, 자녀 복지비, 보호수당, 소득 지원, 주택 지원 등으로 지급되고 있다. 매월 8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공제되지 않은 순수한 소득이니 세금까지 고려해 보면 거의 1억5천만원을 버는 것과 다름없다. 이 정도면 맞벌이 부부가 벌어 들이는 소득을 웃돌고 있다. 영국인 개인 평균소득이 4천400만원이라고 하니 세금 전 소득을 고려해 보면 세 배를 상회하고 있다.
그 정도 지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침실 4곳, 거실, 화장실 2곳, 그리고 정원이 구비된 임대주택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도 식구 17명이 지내기에는 부족, 시당국이 더 큰 집을 모색하고 있을 정도다. 기본적인 주거 공간과 생계유지를 위해 선진국가에서 그 정도 지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위에서 그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 보니 귀족 생활을 하는 것으로 핀잔을 줄 정도라고 한다. 주부인 마가렛은 아이들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여서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도 3교대로 할 정도이며 각종 허드렛일을 하다 보면 새벽 1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는 게 예사라고 한다.
문제는 바로 30대 중반인 남편 에릭에게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인 에릭이 백수로 생활한지가 3년이 지나고 있다. 그도 한때는 배달업체에 운전기사로 취업, 겨우 1주일에 25만원을 받게 되다 보니 취업했다고 복지 혜택이 급격히 감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고 지내면 한달에 800만원 넘게 정부로부터 나오는데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일한 결과가 오히려 전체 소득이 급격하게 감소, 겨우 1주일 일하고 바로 그만 두게 됐다.
비록 아주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점에서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사회복지와 사회보호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어느 제도이든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어도 시행하다 보면 허점이 드러 나지만, 특히 사회복지 문제는 한번 복지지원으로 시행한 제도를 다시 환원하긴 10배, 100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시행하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복지를 지향하는 게 필요하다.
/권 율 정
인천보훈지청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