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통계학을 전공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면 “통계학요? 거참 어려운 것 하시네요”란 인사를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선거 때가 되면 여론조사 통계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솔직히 믿어도 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흔히 만난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한 리즈레일리는 이 세상에 세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그냥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과연 통계가 무엇이길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술 안마시고 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늦은 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노라면 종종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웬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든다. 단속 경찰이 운전석으로 음주측정기를 내밀면 보란듯 당당하게 응한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무사통과다. 통계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생뚱맞게 웬 음주단속 이야기냐고? 음주단속을 보면서 현대사회에서 통계의 쓰임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음주측정기는 혈중 알코올농도를 재는 기구로 알려져 있다. 운전자를 측정한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가 0.05%를 초과하면 걸리게 된다. 음주단속에 적발된 운전자들중 일부 고약한 사람들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심한 경우 단속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순순히 승복하는 편이다. 음주측정기란 도구의 위력 때문이다. 만일 음주측정기가 없다면 어떤 소동들이 벌어질까. 경찰들은 음주정도를 혈중 알코올농도란 수치로 나타내주는 편리한 기계를 만들어 준 발명가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정(鄭)씨 성과 최(崔)씨 성을 가진 두 어린이가 서로 자기 성씨의 인구가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자. 이 아이들의 다툼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사람중 최씨가 더 많으니 최씨가 많을 것이라고 하면 될까. 이 다툼은 통계청 홈페이지에 접속, 인구 통계를 찾아봄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최씨는 약 217만명, 정씨는 약 201만명 등으로 최씨가 정씨보다 16만명 더 많다. 이 통계는 두 아이의 다툼을 일거에 멈추게 해준다. 음주측정기가 음주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해주는 것처럼 통계도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객관적인 판정을 내리게 하는 도구다.
지난 2002년 집권당이던 민주당은 사상 초유로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당사자이던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여러가지 이유로 서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주장했던 바, 후보 단일화를 위해선 양쪽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객관적인 판정기준 마련이 필요했다. 이때 두 후보 진영은 객관적인 여론조사 통계를 심판관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정몽준 후보를 앞서 마침내 노 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될 수 있었다. 통계수치에 의해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판정했던 것이다. 지난 90년대말 한국과 일본은 어업협정을 맺은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주무장관을 비롯, 협상 관계자들에게 언론의 뭇매가 가해졌었다. 국제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누구나 공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다.
흔히 21세기를 지식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교양중 하나로 통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들 수 있다. 더 이상 통계하면 무조건 어렵고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통계와 노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TV를 만들줄 모른다고 멀리하는 사람이 있을까. TV야 어떻게 만들든 유용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통계들을 조금씩 즐겨보자. 그런 의미에서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나라 인구통계들을 한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박 진 우
통계대사·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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