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어른이 없다

초로의 노인이 길에서 봉변을 당했다. 젊은 사람에게 밀치고 멱살잡이까지 당했다.

그 젊은이는 당초엔 또래의 여성을 주먹질 끝에 씩씩거리며 발로 마구 차댔다. 여인은 길바닥에 쓰러진 채 “사람 살리라!”라며 소리쳤다. 구경꾼은 많았으나 아무도 말리려 들지 않았다.

길가던 그 노인이 보다못해 말렸다. 주먹질하는 젊은이 손을 붙잡고 “무슨 일인진 몰라도 약한 여잘 손질하면 되나?”하며 타일렀다. 이게 화근이 됐다. 젊은이는 “무슨 일인지 모르면 그냥 가! 영감태기야!!”하고 떠밀면서 불똥은 노인에게 번졌다. 구경꾼들은 여전히 구경만 했다.

이 사회에 어른이 없다. 산업사회에서까지도 이러진 안했다. 깡패끼리 싸우다가도 어른이 말리면 “에잇, 재수없어…”하고 혼자말로 투덜대면서도 말을 들었다. 지금은 이웃 어른도, 동네 어른도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없다. 그저 나이든 사람은 보잘것 없는 영감태기이고 할망구일 뿐이다.

백발의 노구를 삶의 경륜이 축적된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않게 된데는 연유가 있다. 사람이 살면서 무수히 중첩되는 경험적 가치가 곧 소중한 식견이었던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른의 경험이 필요했던 농경사회가 아닌 정보사회다. 정보사회는 또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와 같은 협동사회가 아닌 개별사회다. 나와 상관없는 일은 아예 돌아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어른이 없기는 가정 또한 마찬가지다. 예컨대 살림 사는 얘길 늙은 부모와 의논하는 젊은 부부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세대 차이를 들어 뒷방 늙은이로 치부하는 예가 많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이 재산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노인들 입에서 많이 나온다. 재산을 미리 나눠주고 나면 그 날로 찬밥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재산이 있는 노인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억지로라도 어른 대접을 받을 판이니, 재산없는 노인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어른이 없기는 국가사회도 매한가지다. 아니 이 즈음은 더 심하다. 자유당 독재정권도 정적(政敵)을 어른대접할 줄 알았다. 그의 사저(私邸)를 ‘서대문 경무대’(청와대)라 했을만큼 세도가였던 이기붕도 신익희·조병옥 등을 국가 원로로 처우해야 할 땐 했다.

유신정권에서 박정희는 연로한 야당 당수 유진산과 무진장 싸우면서도 그를 어른 대접했다. 이 바람에 유진산은 ‘사쿠라’니 뭐니하고 별의별 소릴 다 듣기도 했지만 그가 죽어 가족에게 남긴 것은 자기집도 아닌 전세든 한옥 한 채의 전세돈 뿐이었다.

이 정권은 민주화세력이란 걸 간판 삼는다. 민주화운동은 온통 자기네들만 한 것처럼 공치사를 일삼지만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대부(代父)다. 이 어른이 노무현 정권에 쓴소리를 했다 하여 이해찬 총리가 발끈했다. 이해찬은 그의 말마따나 민주화운동할 때 쫓겨 다녔다. 그 무렵 명동성당에서 암탉이 병아리 품듯이 열혈청년 이해찬을 품어 보호한 사람이 김 추기경이다. 감히 폄훼할 입장이 못되는 어른이다. 이 총리는 또 수십 명의 국가사회 원로들이 ‘나라의 정체성 확립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자 “그 사람들은 원래가 그런 사람들”이라며 의미를 깎아 내렸다. 비록 생각이 다르다 하여도 어른 대접을 그렇게 해서는 나중에 자신도 대접받기가 어렵다.

이런 건 있다. 어른이 어른노릇 하는 게 어른 대접하기보다 더 힘들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 생각이 같은 어른만 어른이고 틀리면 어른이 아니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단원화(單元化) 사회가 아닌 다원화(多元化)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사회는 정신적 공황의 시대다. 오뉴월 흉년과 같다. 흉년에 먹을게 귀해 죽을 쑤면 어른 아이를 구분하여 그릇에 퍼담기가 힘들다. ‘오뉴월 흉년에 어른도 죽 한 그릇, 아이도 죽 한 그릇이다’라는 속담이 이래서 나왔다. 어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대체로 똑같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공황의 현대사회다.

인간사회 규범의 으뜸은 법률도 도덕도 아닌 인성(人性)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으면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다. 어른이 없는 현대사회는 이리하여 참으로 두렵지만 그래도 미래는 있다. 역시 인간사회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전철이나 버스의 경로석을 젊은 사람이 차지한 채 양보할 줄 모른다 하여 노여워하기보다는 참는 것이 어른의 면모다. 비굴함도 옹고집도 버려야 한다. 맑은 심성의 혜안을 갖도록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어차피 노년의 세월은 인고(忍苦)의 세월이다.

정녕, 어른은 없는 것일까.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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