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아버지가 작고했다. 60대의 맏아들 내외는 아버지를 모셨지만 아버지 이름으로 된 집의 소유권을 등기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가 맏아들이 갑자기 병사했다.
며느리가 집을 팔려고 하자 두 시동생이 나섰다. “우리도 아버지 유산에 대한 상속권이 있는 데, 왜 형수가 독차지 하려느냐”는 것이다. 이래서 매매가 3억원의 거래 흥정은 계약 단계에서 깨졌다.
형수는 “그럼 너희들이 삶아먹든 볶아먹든 알아서 하라”며 집을 비어주고는 수원을 떠났다. 예전 같으면 홀로된 형수를 위해주는 것이 전통적 정서의 미덕이다. 돈 맛을 아는 세태가 이런 미덕을 배덕했다. 그 형수는 사는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닌 시동생들의 비정에 아마 의절을 작심했을 지 모른다.
어떤 소주 애호가는 X만 선호하다가 △△로 바꿨다. 전엔 △△만 마시다가 X으로 바꾸었는 데 다시 바꾼 것이다. 연유는 이렇다. “△△가 집안 재산 다툼을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싫어 X으로 바꿨는 데, 이번엔 X을 만드는 재벌이 형제간에 싸우는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로 다시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가 잘 팔아주어 번 돈이 화근이 되어 집안 쌈질이나 하는 업체의 제품은 안 팔아줘야 한다”면서 “제3의 소주가 시중에 나오면 그 소주를 애호하겠다”고 했다.
어느 장의예식장에서는 아버지 빈소 앞에서 형제자매 간에 벌써부터 유산 분배를 두고 벌어진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이 난무하여 ‘112’가 출동해야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 고인은 자녀들에게 남겨준 많은 유산이 오히려 가슴에 사무치는 통한이 됐을 것이다.
물론 돈은 벌어야 하고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 돈은 있어야 한다. 수원에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재산가로 노년을 멋 있게 보내는 이가 있다. 전통 사상의 정신공익 사업을 하는 분인데 드러나지 않은 장학에 대한 관심이 한편으로 더 높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대준지가 20년이 가까워 그 수가 수 십명이나 되는 중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 궁금해서 캐어 물으면 “에이! 그런 얘긴 말고 술이나 먹자!”며 손사래를 내젓곤 한다. 일상의 생활을 무척 마음 편하게 대하며 산다. 그래서 그런지 친지들과 술을 꽤나 즐기는 데도 건강하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한 날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병신이 뭔고?”하자 중신들은 별의별 신체장애를 다 들었다. 그러나 환공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대들 말을 들었지만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돈이 없는 것 보다 더 큰 병신은 없다”라고 했다. “돈이 없으면 부모 생신이나 기일이 닥쳐도 제대로 예를 못갖추고, 돈이 없으면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돈이 없으면 친구가 와도 반갑지 않고 하여 사람 구실을 못하니 이보다 더 큰 병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환공의 이같은 비유는 그러므로 가난한 백성이 없도록 민생을 잘 거두라는 당부의 뜻으로 했던 것이다.
남을 도울만큼은 못되어도, 내가 남에게 폐를 안끼치고 제대로 사람노릇 해가며 살기 위해서도 돈은 있어야 하지만, 돈이 있다고 꼭 행복하고 돈이 없다고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맘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시(視) 청(聽) 후(嗅) 미(味) 촉(觸)의 오감(五感)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의 오욕(五欲)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은 노력은 해야하지 않나 싶다.
어느 초등학교 어린이가 미술시간에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니까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그렸다고 한다. 우의(寓意)적 추상이 무척 놀라웠지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걱정이 됐다. 자녀들 보는 데 앞에서 부부가 돈 타령을 벌이곤해 아버지를 돈 버는 기계처럼 여기도록 만든 것이 충격이었다는 것이다. 궁리끝에 서재에서 차근차근하게 알아듣게끔 설명해줬더니, 이번엔 책이 가득찬 책꽂이 그림에 아버지의 눈을 그려 오버랩했더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믿는다.(有錢可使鬼) 그러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돈이 없어 해결못하면 시일이 해결해 주지만, 세상사엔 돈으로 해결치 못하는 것도 더러 있다. 이것이 ‘돈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고, 사람나고 돈 난’ 인성의 존엄성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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