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호칭에 관한 오해와 진실

어느 점잖은 교장 선생님이 식당에서 중년의 종업원을 “언니~”라고 부르시기에 민망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물어 봤더니 그녀는 정작 ‘아주머니’보다 ‘언니’가 더 좋다는 것이었다. ‘언니’가 젊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너도 나도 ‘언니’를 편하게 애용하나 보다. 그 덕분에 ‘언니’는 요즘 가장 널리 쓰이는 호칭어가 됐다. 나이 지긋한 신사나 중년 여인, 젊은 여성이나 남성 할 것 없이 종업원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업원 또한 여자 손님을 ‘언니’라고 부르니 서로가 언니인 셈이다. 이처럼 ‘언니’는 어디서나 통하고 상대의 나이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편리한 통칭 호칭어로 자리잡았다. 어찌 보면 상대의 기분을 배려한 호칭이지만(아주머니보다 언니가 좋다니까), 딸이나 동생 같은 사람을 ‘언니’로 부르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점포에서 손님을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자기 부모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텐데 예의 바르게도 꼭 그런 호칭을 쓰는 곳이 있다. 물론 제 또래 아들이나 딸이 있을법한 손님을 따뜻하게 높이려니 짐작은 간다. 그런 호칭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아기를 낳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불임부부나 미혼 독신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라고 살갑게 부르는가.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귀하같이 아들(딸)을 둔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호칭은 ‘사모님’만큼이나 어색하다.

이처럼 느닷없이 ‘언니’ 혹은 ‘어머님’이 될 때, 난 ‘손님’이란 말을 권해본다. ‘선생’이나 ‘형’에 ‘님’을 붙이듯, ‘손’에 ‘님’을 붙인 ‘손님’은 오래 전부터 써온 정겹고 품위 있는 우리말이다. 게다가 ‘손님’은 손을 맞는 곳이면 다 어울리고 남녀노소를 두루 포용하는 장점도 있다. 또 ‘손님’은 음절이 짧으면서 발음하기에도 편하고 부드럽다. 그러니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딱딱한 ‘고객님’ 대신 ‘손님’을 쓰면 훨씬 좋을 것이다. 한자어 대신 우리말을 쓴다고 낮추는 게 아님은 다 알 터이니 말이다.

호칭은 사람 사이를 멀게도, 혹은 가깝게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직적 사회구조로 인해 친족 혹은 직함 호칭어가 많은데다 경칭에도 민감한 편이다. 요즘 주변에 넘치는 ‘○○님’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그래도 ‘기사님식당’이나 또래 끼리의 ‘학우님’ 등은 지나친 표현이다). 그래서 직업에 따른 호칭어는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예컨대 ‘기사님’과 달리 ‘미화원님’은 당사자를 언짢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적절한 호칭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이란 언중(言衆)이 쓰는 대로 변화하고 자리를 잡아간다. 호칭어 역시 필요에 따라 새로운 말이 태어나고 대체된다. ‘도우미’는 비록 우리말의 파괴를 통한 조어지만 성공적으로 자리를 굳힌 사례이고 ‘간호사’ 역시 ‘아가씨’로 불리다 바른 호칭어를 찾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손의 경우에는 ‘손님’을 정착시키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알맞은 호칭이 가능할 것이다. 호칭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그만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를 밝게 가꾸는 힘이 될 것이다.

/정 수 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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