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쟁이 예사롭지 않다. 국산 김치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타산이 맞지 않는다. 국내 가격에 비해 4분의 1 밖에 안되는 중국 소비자 가격에 맞춰 수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런 데도 중국에 수출하는 국산 김치에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면서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수출하지도 않은 품목을 수입금지 한다는 건 해프닝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중국의 김치전쟁 도발은 의도가 있다.
김치를 두고 애를 먹인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은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선수촌 공식 식품으로 납품하려고 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AC)의 국제표준 규격으로 인증을 신청하기도 했다. 다행히 농협의 분발로 두 가지를 모두 저지시키고 올림픽선수촌 공식 식품으로, 또 CAC 국제식품규격으로 인증을 받았다.
김치는 예컨대 해외 스포츠 게임에 출전하는 한국팀에겐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먹는 덴 눈치를 살펴야 했다. 김치를 간수하는 소임은 팀의 막내가 늘 맡으면서 식탁에 내놓는 덴 요령이 있어야 했다. 김치를 당당하게 공식 음식물로 먹게 된 것은 애틀랜타 올림픽 부터였다. 한국 선수들 만이 아니라 이젠 서구의 선수들에게도 기호식품이 됐다.
한국음식의 특징은 중국의 볶음이나 서구의 구운 음식과는 달리 탕과 발효에 있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다. 오늘의 김치문화가 형성된 것은 약350년 전으로 당초엔 ‘침채’-‘잠길침 자’(沈)에 ‘나물채 자’(菜)-라고 했던 것이 그 어원이다. 마늘과 고추는 김장의 필수적 조미료다. 북방식물인 마늘은 단군신화에도 나온다. 단군의 어머니되는 웅녀가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은 인간이 되기까지엔 마늘을 먹은 시련의 고통이 있었다. 삼국사기에도 마늘을 산(蒜)이라 하여 재배 기술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남방식물인 고추가 수입된 것은 17세기 초엽이다. 지봉유설(芝峰類說)은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됐다 하여 ‘왜계자’라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엔 이같은 구절이 있다.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젖국지 장아찌라 / 독 곁에 종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 양지에 가가 짓고 찦에 쌓아 깊이 묻고…’라고 했다.
김치가 지금의 김치로 발달된 것은 고추가 들어온 연후이지만 일찍이 발효식품의 노하우를 익힌 선조들은 독보적 경지를 일궜던 것이다. 가짓수 또한 예순 가지가 넘는 김치는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인의 식품에서 동양의 식품으로, 동양의 식품에서 세계의 식품으로 자리바꿈 하였다. 이에 시샘하여 일본의 ‘기무치’가 뒤늦게 도전했다가 한국인의 완전 원조 식품으로 인정하여 두 손 들었다.
중국은 감히 도전할 생각은 엄두 못낸 반면에 무역전쟁의 보복 수단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김치의 납성분 과다 함량, 기생충 검출 등이 잇따르자, 국산 김치 역시 기생충 알이 나왔다는 중국의 일방적 발표는 황당하다. 인분의 시비 없이는 검출될 수 없는 것이 채소류의 기생충이다. 지금 국내에서 인분을 시비하는 농장이나 농업인은 눈 씻고 보아도 없다. 중국에서나 하는 인분 시비를 한국에서도 할 것으로 알았다면 착각이다.
하긴, 중국 정부도 이를 내심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억지를 쓰는 것은 강대국의 오만이다. 한국은 북 핵 문제의 해결사인 중국에 정치적으로 물려 있다. 정치적 물림에 이어 김치전쟁을 기화로 경제적 물림까지 가고자 하는 서막이 터무니 없는 한국산 김치의 기생충 되받아 치기다. 북녘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어서, 한국 정부가 중국에 매달리다 보니 그들은 그 뭣에도 두려움이 없어졌다.
금세기에도 다를 바가 없다. 강대국들은 패권주의로 치닫는다. 미국의 패권주의 만이 경계의 대상은 아니다. 일본의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하고 중국의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 경쟁은 한국에 특히 지대한 영향을 준다.
‘김치전쟁’, 유서깊은 한국의 김치문화에 도전할 외세는 감히 있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굳이 ‘김치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단순히 김치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명(明), 청(淸)조 시대를 방불케 하는 신(新) 사대주의 인식을 유도하는 속내의 포석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시점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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