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공산당’ 간판이 나붙는다

간첩 관련의 구호가 다 철거된 가운데 어쩌다 남은 표지판이 오히려 낯 설다. 북의 공작원, 즉 간첩은 지금도 건재하다. 사이공 정부 패망 직후에 나타난 기막힌 현상이 있었다. 정부내 요인, 학계, 사회단체 등 지도층에 하노이 정부의 공작원 노릇을 한 의외의 인물이 수두룩했다.

남쪽 사회를 일컬어 ‘간첩천국’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간첩 노릇도 되레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작계 5026 북한 전략거점 정밀타격 전략’ ‘작계 5027 대북 선제공격 등 전면전 계획’ ‘작계 5029 북한 붕괴 등 돌발사태 대비책’ ‘작계 5030 북한 압박통한 정권교체 계획’ 등은 한반도 정세의 상황 변화에 따른 돌발 사태의 대비책이다. 국방 비밀문건이다. 간첩도 입수할 수 없는 이런 고급 기밀이 정치권의 입방아에 의해 절로 누설되고 있다. 평양 대남공작부서가 웬만한 첩보 보고는 ‘이런 것도 첩보라고 올렸느냐’며 질책하기에 딱 알맞다. 어차피 남쪽 사회의 첩보는 이리저리 ‘자연뽕’으로 다 까발려지고 있다. 첩보 활동도 좋지만 혁명 완수의 결정적 시기를 보다 앞당겨 성숙시키는 방향을 ‘공작원’의 새 소임으로 부여될 수가 있다.

이대로 가면 공산당 간판이 서울 거리에 나붙는다. 중앙선관위에 정당 등록이 되어 정치활동을 합법적으로 하게 된다. 이미 형해화된 국가보안법이 그나마 숨이 끊어지면 북쪽 체제를 선전해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대한민국 법률 그 어디에도 공산당을 불법화한 규정은 없다. 이에 비해 있는 것은 학문·예술의 자유와 저작권 등의 보호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이 기본권은 곧 표현의 자유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이의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신기남 전 의장,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이어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표현의 자유를 들어 강 교수를 두둔하고 나섰다. 검찰은 구속방침을 정하고도, 정권의 조직적 비호에 눈치를 살핀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식물화됐다. 통일부는 신원조회 없이 520명을 ‘아리랑 공연’ 참관을 위해 방북시켰다. 국정원의 ‘방북 부적절’ 의견을 통일부가 일방적으로 무시한 사례 또한 숱하다. ‘주체의 인테리론’ ‘김정일 장군 선군정치 이론’을 비롯한 서적과 북의 체제찬양 가요CD 등이 방북인들에 의해 대량 반입됐다. 이 역시 서적과 CD를 지니고 듣고 보는 것만으로는 현행 국가보안법상으로도 처벌하기가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폐기되면 학문의 자유로 둔갑될 것이다.

공산당 간판을 내걸 수 있는 구실은 헌법이 규정한 양심의 자유다. 양심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다. 공산당을 불법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리를 내걸 것이다. 6·25 한국전쟁을 통일내전으로 왜곡하는 부류들이 앞으로 공산당 불허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안 할 리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2003년 6월29일 일본 방문에서 가즈오 일본 공산당 위원장에게 “한국은 현재 공산당 활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민주국가로서 문제다”란 말을 한 바가 있다.

양심의 자유를 들어 공산당 활동을 제기하면 이를 저지할 헌법상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즉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 및 사기업의 국·공유화 또는 통제 등 금지로 자본주의를 경제질서의 기조로 삼고 있다. 그리고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시킬 수는 있으나 이의 제소권을 정부가 갖고 있다. 공산당 간판을 달았을 경우, 이 정부가 과연 헌법재판소에 해산 청구의 제소를 할 것인 가는 의문이다.

공산당 간판이 나와도 일본의 공산당 같으면 또 모른다. 국내의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자는 대개가 친북세력이며, 북은 교조적 사회주의도 아닌 우리식 사회주의며, 우리식 사회주의는 김일성주의다. 김일성주의도 이젠 김정일주의로 가고 있다.

공산당이 국내 정당화한다 해도 민중사회의 호응을 크게 얻는 지지 세력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혼란은 불가피하다. 당대와 후대가 먹고 살아갈 일이 바쁜 이 시점에서 낡은 이념의 논쟁으로 국력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남북의 당면과제는 공존공영이며 장래과제는 평화통일이다. 이 과정에서 동포애의 남북교류를 틈탄 북의 정치적 침투를 이 정권이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는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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