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평양구경 갑시다”

추석 밑에 갑작스러운 북한으로부터의 대규모 방북초청이 남측 민간단체에 쏟아졌다. 초청장을 받은 시민단체들이 진위를 파악하는 동안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의 극적 타결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5000명이 넘는 남측 동포들을 초청한 북한의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유례 없는 이 사태에 보수세력들은 서둘러 북한이 현재 평양에서 행사하는 아리랑 축전에 친북인사들을 초대해 자신들의 대남전략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형적인 전술이라고 주장했다. 북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아리랑 축전을 보여줌으로써 체제선전과 수십억원의 떼돈을 벌려는 이중포석이라는 보도도 있다.

필자는 북의 행태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이다. 민족이념으로 통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맡고 있는 필자는 실무회담차 개성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방북초청에 대한 거침없는 그들의 자신감이 낯설고 체류비용 역시 파격적이었다. 과거와 같은 소극적인 모습이나 물질적인 요구사항도 없었다. 개방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회주의 국가의 모든 사회적 행위는 노동을 위한 것일 때만이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특히 문화 예술활동은 인민의 노동의욕과 역사성을 고취시키는 목적을 가진다. 예술의 기본인 감성이 개입되지 못한다. 북의 아리랑 축전은 인민들의 억제된 감성을 발산시키는 집체극이다.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동원되어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을 하고 이를 북한의 전 인민이 3개월 동안 모두 관람한다.

아리랑 축전은 입으로 전해져 현재는 북한의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행사기간동안 상당수 외국인이 관람을 위해 방북을 한다. 특히 카드섹션은 세계에서 북한만이 가능한 대규모 집단행위예술로 평가된다. 그 아리랑 축전이 이제 남측에도 개방된 것이다. 북은 이번 초청에 가급적 정치색을 배제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우선 남측 초청단체를 철저하게 순수 민간단체, 그것도 인도적인 대북 지원단체로만 한정했다. 북과 친밀한 통일운동 단체들도 이번 초청에서는 모두 제외되었다. 장사한다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항공기도 남측 항공기만을 이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아리랑 축전 참관 목적이 아닌 평양참관임을 강조한다. 아리랑 축전은 밤에 1시간여를 관람하는 관광일정의 하나일 뿐이다.

이번 방북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남측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남측의 무변화가 두렵기까지 하다. 이를 이용해 장사를 하려는 일부 단체도 있고, 항공사들도 대목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규모 방북단이 모이지도 못하고 북이 제시한 가격이 1박2일 동안 숙박과 버스, 안내, 경호 등의 경비로는 결코 과하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이 북의 공연 하나 봤다고 주사파가 될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다.

아무렴 어떠랴. 평양에 남측 사람이 넘치고 그들의 차량으로 인해 도로가 정체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상상인가. 6자회담의 타결로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당장의 과제가 되었다. 평화체제의 모습이 어떤 형태를 띨지는 몰라도 그 기본은 평양거리에 남녘사람들이 활보하고 서울에 북녘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것 아닌가. 그들이 청계천과 화성을 감상하고 우리가 대동강과 선죽교를 건널 수 있다면 그것이 평화체제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분단의 장벽은 결코 하루 이틀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다양한 형태의 인적교류의 확대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북한의 초청은 값지다. 올해는 비록 항공기로 가지만 내년에는 육로로, 철로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평양구경 갑시다.

/임 형 진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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