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두밀리 이야기

우리나라는 70% 이상이 산으로 덮인 그야말로 산악 국가다. 우리나라 면적은 미국의 40 몇 분의 1이지만 주름진 산하를 다림질로 쫙 펴서 그 표면적을 재면 크기가 6분지 1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산하는 산이 많고 골짜기가 많은 주름진 나라다. 우리 조상들은 이 수 많은 골짜기 마다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며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수많은 골짜기 마다 독특한 삶을 살아 왔으니 그 만큼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지녀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부국론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천혜의 문화자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 문화자원의 다양하고 풍요로움을 잘 살려내질 못했다. 이조의 유교적인 봉건체제가 이 문화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활달함을 훼손해 왔으며 그 뒤로 일제의 수탈과 억압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왔다. 해방 이후에도 좌우 이념대립과 6·25 전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밑에서 이래저래 우리의 삶이, 우리의 문화가 억압을 받거나 훼손 당해왔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전통적인 삶의 방법과 지혜와 기술들이 억압당하고 파괴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에게도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는 골짜기가 하나 있다. 바로 가평 두밀리다. 경춘국도에서 가평읍 5㎞전에 왼쪽으로 휘어져 한 6㎞ 남짓 들어가면 대금산과 수리재, 불기산이 오붓하게 둘러싼 막다른 산촌 동네 두밀리가 나온다. 국도에서부터 한 서 너 굽이를 돌아 들어가면서 보여 지는 경관이 하도 좋아 소설가 이윤기가 마치 강기도(강원도와 경기도를 합해서 부른 말) 같다고 한 그 두밀리다. 또 10년 전 쯤 두밀리 분교 폐교 반대를 위한 주민들의 싸움으로 유명해진 그 두밀리다.

그러나 요즘 그 두밀리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삼 년 전 쯤 어떤 주택업자가 두밀리 들어가는 입구의 한 봉우리를 완전히 까뭉개고 거기다가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었는데 이 일이 신호탄이라도 되듯이 그 후로 여기저기 두밀리의 경관을 망치는 상업적 펜숀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난데없이 두밀리로 해서 대금산을 뚫고 현리까지 도로가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도로계획을 추진하는 경기도에서는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이미 공청회도 끝낸 모양이다. 주말과 방학 동안을 주로 이용하는 나 같은 반쪽짜리 주민들에게는 공청회가 통보도 되지 않았다. 전언에 의하면 주민들의 대부분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외통지에 서울로 가는 길도 하나 더 생기고 따라서 땅값도 오르리라는 욕구와 기대감 때문인지 공청회 당시 한 두 사람 외에는 주민들이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 것으로 묵시적 찬성을 하였다고 한다. 도로가 생김으로서 마을이 두 쪽으로 갈리고 터널에서 쏟아져 내릴 매연과 자동차 굉음이 이 마을을 어떻게 파괴할지는 보지 않고도 상상이 가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름다운 골짜기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한 마을을 파괴할지도 모를 이러한 도로 건설과 한마을의 경관을 무참히 파괴한 전원주택사업, 돈벌이만을 위한 무국적의 펜숀건축물들은 하나하나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이전에 지역주민들의 활발한 의견들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지역주민들이, 지역주민들의, 지역주민들을 위한 자발적인 의사소통만이 한 마을의 문화적 권리와 그들의 삶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김 정 헌 화가·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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