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여러가지 실패의 과정을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003년 4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노무현 대통령은 이튿날 “엄살 좀 떨어봤다”고 말했다.
“한국은 현재 공산당 활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이는) 민주국가로서 문제다. 내가 일본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 방문에서 시이 가즈오 일본 공산당 위원장에게·2003년 6월9일) 대통령의 이 말에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원론적 수준의 덕담이라며 서둘러 파문 진화에 나섰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칠레 AFEC 정상회의 때) 개성공단에 함께 가자는 내 얘기를 받아들였다”는 말에 매클렐린 미 백악관 대변인은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사실은 내년 부산 AFEC 회의 때 부시가 오면 개성공단에 한 번 가자는 정도로 혼자 비공식 인사 치레로 가볍게 말한 것), 청와대는 대통령의 이 말에 외교적 파장이 일자 역시 덕담이었다고 해명했다. (올 1월5일)
“모든 측면(물가·외환·경제성장률·실업률)에서 한국경제는 완전이 회복했다” (4월16일 터키 경제인 간담회)는 말엔 어느 나라 경제를 얘기하는 것이냐는 반론이 국내에서 일자, “당장 문제될 만한 구조적 요인은 극복했다”는 뜻이라고 김영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이 애써 봉합에 나섰다.
대통령의 다변증은 정말 기록적이다. 2003년 5·18 행사 때 한총련 등 대학생의 과격 시위를 제대로 대처치 못해 쏟아진 비난에 대해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도 했고, 취임 얼마후에 가진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민주당 당내 후보시절 모 검찰 지청장에게 사건 청탁한 사실을 한 검사가 들추자 “이쯤하면 막 가자는 것이죠?”라는 말을 뱉듯이 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자신과 한나라당측 불법자금을 가리켜 “티코 대 리무진”이라고 희한한 비유를 했다.
그의 독설은 가히 촌철의 독기다. 기자회견 때 향리에 있는 맏형의 비위 사실을 두고 “좋은 대학 나오신 분이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라고 해 되레 핍박 받은 대기업 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 당선자 시절 국영 기업체 임원의 전문화를 강조하면서 다짐했던 낙하산 인사 배제가 말과는 달리 낙하산 부대 일색으로 투입된 데 대한 비난을 의식, 중앙 언론사 간부 청와대 초청 오찬 자리에서 “잘 봐 달라”고 전례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은 품격이 없는 게 특징이다. ‘쪽수’ ‘통박’ ‘배알’ ‘개판’ ‘조지고’ ‘깡통차고’ ‘맛 좀 볼래’ 등 시정에서도 막된 사람이나 쓰는 언어가 그대로 난무한다. 말 바꾸기의 명수다. 하긴, 대통령을 하기 전에도 그랬다. “재벌의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서 노동자에게 분배하자”는 것은 1988년에 있었던 대정부 질문이다. “잘 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 물에 빠져 죽으면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노동자가 염병해 자빠져 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끝이다”라고 한 것은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한 말이다.
이런 말이 후보시절 말썽이 되자 “지금은 그같은 견해나 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 (2002년 3월 KBS 라디오 방송) 라고 말하고 파업 현장 발언은 “상징적인 정치연설”(2002년 3월 전주 TV토론)이라고 말 머릴 돌렸다.
‘노무현 화법’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한 실수나 무식, 생각의 모자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수단이다”라고 했다. (2003년 6월 정윤재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결국 천방지축의 다변증은 계산된 개그인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구분되는 탈 권위와 탈 품격을 혼돈하는 것은 인식의 혼돈을 드러낸다. 마치 독재자처럼 헌법을 가볍게 보는 건 그같은 인식의 혼돈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다. 그의 ‘대연정론’에서 “정권을 내준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헌정질서 파괴다. 대통령직의 정권은 헌법상 불가분이다.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정, 내주고 싶으면 하야하는 길이 유일하다.
8·15 경축사에서 ‘국가범죄 민·형사 시효 배제’를 주장해 위헌 파문이 확산되자 하룻만에 “형사적 소급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꿔 한 발 뺐다. 그런다 해도 노무현 방식의 그같은 주장은 분단국가에 겹쳐 분열국가를 만드는 폐악만 가져온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세 자리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과거에만 매달리는 정략적 집념의 개그 메들리에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민중은 지쳐 식상할대로 식상해 있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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