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왜 스스로를 하향 평준화 시키는가

근간에 우리 사회에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안기부 직원이 274개의 도청 테이프를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무슨 일기장이나 수금장부라도 되는 것으로 여긴 것일까.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일을 했으면(자기 소신으로 내부고발 등을 통해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선진국이 되겠지만) 즉각 소각해 버려도 시원치 않을 물건을 공갈용 수단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니 자기 역할에 대해 뭔가를 망각하고 있었나 보다.

KBS 드라마 프로듀서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날로 심해지는 며느리들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마침내 시어머니의 뺨까지 때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있어서 연출했다니 그런 논리라면 요즘 너무 더워서 밤에 잘 때 벗고 자는 사람이 많으니 방송에서도 벗고 자는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인가. 공공방송 프로듀서라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이다.

마침내 MBC가 지난달 30일 ‘생방송 음악 캠프’에서 출연자의 성기를 4초간 내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일차 책임이야 무대에 오른 펑크 록 밴드 럭스의 퍼포먼스 팀인 ‘카우치’의 신모, 오모 씨의 행위 탓이지만 그런 연예인이 이따금 실제공연에서 옷을 벗는 일이 있다는 사정을 알았을 텐데 이를 막지 못했다는 건 방송사나 출연자나 생방송 공연을 카페수준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정치가에서도 대변인의 ‘샐 위 댄스’며 ‘카바레’ 수준의 막말 싸움을 보면 정치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음을 본다. 지역 정치와 국가 정치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양상의 원인은 일을 대하는 개인의 준거의식의 마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프로듀서는 공공 정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타방송 프로그램과의 시청률 경쟁이나 스폰서의 눈치를 의식하고 있고 공무원은 국민보다 자기의 안위가 우선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사회의식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런 기관들이 국가의 정보를 독점 혹은 과점하고 있는 공공기구라는 점이다. 혹시 이름 없는 케이블이나 위성 채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사회 이슈화 될 판에 버젓이 대형매체에서 벌어졌으니 뭐라 해야 할까. 공공매체를 사적 이득을 위해 사유화 한다는 건 공공정신의 위반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밖에 SBS의 캐디 비하 드라마 대사 등의 현상은 왜 자주 일어날까?

지금은 우리 사회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휴대폰 보급은 90%,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집은 100%가 넘는데 자기 집과 대형 평수, 강남이나 분당 등에 모자라고, 직장은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고 편한 직장이 모자란다.

모든 게 겉으로 드러난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으로 높아져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획득을 위해서는 협상이며 혁신, 개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투쟁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이다.

탄핵 이래 우리는 관습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부터는 법률이 아니라 시민의 상식으로 규칙을 지키는 규범, 법이 아니라 국민의 전통이나 풍습이 갖고 있는 관습을 중요시해야 하는 선진국 형의 문턱에 와있는 것이다.

근간의 방송사고와 도청정보의 유출은 외적인 법보다 모두가 지켜야 할 강령(code), 사회 속에서의 내적 규범, 국민이 지켜야 할 조화의 관습이 새삼 강화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시민 각자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김 광 옥 수원대 교수/ 법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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