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박수 칠 때 떠나라.가발

#박수 칠 때 떠나라

생중계로 본 생생한 수사극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기다려도 앙코르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 어렵다.

미련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살인사건 수사과정이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다는 기발하고도 기막힌 아이템에서 출발한 영화는 범인 색출에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숨막히고 흥미진진한 과정을 돌아온 영화의 결론은 단순 명쾌했다. ‘박수 칠 때 떠나라’. 그것이 이 수사극의 제목이 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이 받는 여운은 꽤나 길고 매력적이다. 1980년대 드라마 ‘수사반장’의 첫회 제목이 이와 동일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웰컴 투 동막골’에 이어 이 작품 역시 장진 감독의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연극에 이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장 감독은 연극에서 검증받은 특유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적절히 교배했다. 인물 클로즈업과 적당한 CG, 그리고 드라마틱한 카메라 워킹. 또 있다. 흥행 보증수표 차승원을 최고로 섹시한 검사로 만들어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우리 하는 일 다분히 쇼였잖아. 예전부터…. 적당한 때에 큰 거 하나씩 터뜨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놈 타이밍 맞춰서 밟아주고….”

극중 부장 검사의 말이다. 실제로 살면서 절묘한 시점에 터진다 싶은 검찰의 대형 수사 발표와 종종 맞닥뜨리는데, 그 부분을 포착해 긁어주는 대사다. 수사과정을 생중계하는 것도 기막힌데 방송사는 도중에 시청률을 위해 무당까지 불러서 한바탕쇼를 연출하자고 제안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곳곳에 현실을 풍자하는 다분히 냉소적이면서도 코믹한 상황을 펼쳐놓는다. 마치 남자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을 보는 듯. 방송사는 수사과정을 생중계하면서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 패널과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을 유도하고 용의자의 유무죄에 관해 ARS 투표도 받는다.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신하균 분)는 급기야 매스컴이 만든 스타가 돼 그를 감시하는 경찰조차 그의 사인을 받기를 원한다. 현재의 TV가 경찰이 범인을 추격하는 현장을 생중계하고 부부싸움 등을 가감없이 내보낸다면 영화는 그보다 더 ‘막나가는’ 미래를 상상한 것이다.

다분히 블랙 코미디적인 상황. 연극적인 표현도 부분적으로 살렸는데, 많은 참고인들의 모습이 과장되게 그려졌다. 모두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진술하지만 하나같이 엉뚱하게 오버를 한다. 매순간 숨을 죽이게 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와중에 웃음이 ‘푹’하고 터져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그런 상황이 소름을 돋게도 한다. 거짓말 탐지기 실험을 위해 온몸에 전기선을 단 신하균이 “난 여자예요”라며 절규하는 모습은 사이코 드라마로 빠진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영화는 범인에 대한 호기심을 끝까지 가져가는데 성공했다. 곁가지를 많이 냈지만 엉뚱한 길로 빠지거나 본말이 전도되는 누는 범하지 않았다.

초반의 긴장감이 중반부에서 다소 느슨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 신마다 호흡을 다 찾아가며 진행한 감은 있다.

장 감독은 영화가 가진 탄탄한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 막판 반전의 효과를 놓치지 않았다. 블랙코미디 특유의 진지함과 코믹함, 불편함 사이를 적절하게 오간 영화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선정적으로’ 포장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누가 죽었느냐, 누가 죽였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일까에 물음표를 찍는다. 왜 죽었는가, 왜 죽였을까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11일 개봉.

#가 발

기억 품은 공포가 자란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수현(채민서). 오늘은 퇴원날이지만 사실 병이 나은 것은 아니다.

병세는 오히려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황. 언니 지현(유선)은 수현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슬픈 표정을 감추며 지현이 준비한 선물은 가발. 윤기가 흐르는 이 가발에 묘한 기운이 흐른다.

12일 개봉하는 공포 영화 ‘가발’(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의 출발은 꽤나 매력적이다. 한껏 소리를 질러야 할 여주인공(유선)은 목소리가 없고 예쁜 여배우(채민서)는 삭발에 가발을 쓰고 피투성이로 변할 강단도 있다. 여기에 영화의 소재는 동양 공포물의 핵심 아이콘인 머리카락이다.

목소리가 없는 인물의 리액션은 표정으로만 표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고, 머리카락이 보여주는 공포의 요소 역시 풍부하다. 게다가 삭발에 피범벅인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표현의 여지는 한참은 넓혀져 있다.

집에 돌아온 두 사람.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팔로 수현이 가발을 들면서 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듯, 가발을 쓰면서 수현의 외모는 눈에 띄게 건강해진다. 절망적이던 병세 역시 차차 좋아지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 놓고 지현의 옛 연인 기석(문수)을 유혹하는 등 점점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여기에 가발을 빌려 쓴 지현의 친구 경주가 참혹하게 죽은 채로 발견되자 공포는 극으로 치닫는다. 가발에 뭔가 이상한 게 있음을 직감하는 지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사랑스러운 동생 수현은 점점 공포의 대상이 되어 간다.

매력적인 요소들로 출발한 영화에 감독은 자매간의 우애와 반목, 기억과 애정 등 여러 이야기를 펼쳐 넣으며 퍼즐 맞추기의 재미를 제공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되는 영화의 퍼즐 맞추기는 꽤나 정교한 편. 하지만 촘촘하게 연결돼 있을뿐 유기적으로 흐르지 못한 이유로 공포나 슬픔의 감흥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줄거리의 강약과 장단의 차이가 평이한 까닭에 공포는 영화의 흐름과 함께 쌓여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이 때문에 효과적으로 잘 짜여진 장면들마저 그 장면 안에서만 머물 뿐, 줄거리 전체로 넘나들지 못한다.

단편 ‘빵과 우유’를 만들었던 원신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분홍신’과 ‘여고괴담4’에 이어 올 여름 세 번째로 선보이는 국산 공포 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

‘실미도’ ‘공공의 적’의 강우석 <사진> 감독의 차기작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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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국가적 위기와 갈등을 그린다. 일본의 끝나지 않은 침략 야욕이 한반도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00년 넘게 감춰져 왔던 수수께끼를 파헤친다는 설정. 10월 중 크랭크 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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