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짧은 서당 훈장이 ‘바람풍’(風)을 ‘바담풍’이라고 발음했다. 학동들은 훈장이 한대로 따라 했다. 훈장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분명히 “바담풍”이라고 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훈장의 말을 학동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원칙이 반칙에 의해 좌절되고 상식이 특권에 의해 훼손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달 15일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전한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인즉슨 백 번 옳은 말이다. 문제는 원칙과 반칙, 상식과 특권을 혼동하는 데 있다. 반칙을 원칙이라고 우기고 특권을 상식이라고 우기는 것은 ‘바담풍’ 훈장과 다를 바가 없다. 비근한 몇 가지 예를 든다. 176개 공공기관을 옮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률적 근거가 없다. 재정의 소요액이 3조3천억원이나 유발된다. 종사원 90만명의 가족을 평균 3명으로 잡아도 27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긴다. 법률로 정해 옮겨도 이럴 수가 없다. 하물며 대통령의 생각 하나로 이럴 수는 더욱 없다. 원칙과 상식에 위배된다. 특권적 반칙이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인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 낙선인사를 무던히도 챙긴다. 동병상련의 인정이라면 알아듣기가 쉽겠다.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인물 챙기기…”란 말은 도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애써 덧붙인 말을 듣고 나니 좀 알 것 같다. 다음 선거 출마 때 ‘장관’ 감투의 경력을 달게하는 것을 인물 만들기로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생각나는 게 있긴 있다. 김대중 정권에서 대권에 뜻을 둔 잠룡이면서 백두였던 노무현은 경력 쌓기용 장관 자릴 조르다시피 원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했다는 말을 그쪽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노 대통령은 너무한다. 노무현은 그때 입각을 해도 부처가 해양수산부인 건 좀 엉뚱하지만 장관은 할만 하다고들 수긍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인재감으로 쓰는 장관 만들기는 숫제 장관감이 맞는지 의문 투성이다. 장관감이 아닌 사람을 자의로 쓰는 건 국정의 농단이다. 상식이 특권에 의해 파괴되고 원칙이 반칙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역대 정권의 병폐였지만 이 정권만큼 심하진 않았다. 세상에 사돈에게 한 자릴 주는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
일선 GP 총기 난사사건으로 생때같은 장병 8명이 비명에 숨진 데 책임을 진 윤광웅 국방장관의 사의표명은 국민적 상식이다. 한데, 아니라고 한다. 윤 장관은 국방개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줄은 알지만 국방개혁의 실체가 무엇이고 왜 윤 장관이 그토록 필요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건 임면권자의 소관이다. 그러나 국회의 해임건의 발의를 막고 나서는 것은 월권이다. 해임건의 조항이 규정된 헌법까지 트집잡고 나서는 것은 이만 저만한 난센스가 아니다.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 비판을 두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했다. 고유권한이 아니라고 말한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국회의 해임건의 발의 또한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은 챙기면서 국회의 고유권한 행사는 간섭하려고 든다. ‘바담풍’ 훈장을 생각케 한다.
개혁, 개혁을 말하지만 진짜 개혁의 대상은 이 정권이다. 남의 허물은 스캔들이고 자신의 허물은 로맨스로 치부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러시아유전 투자의혹, 행담도 개발의혹사건에 수많은 청와대 사람이 연루됐다. 이런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 ‘위원회공화국’에 복수차관제로 정부를 비대화하면서 개혁을 들먹인다. 웃기는 소리다. 노 대통령은 걸핏하면 ‘왕조’를 잘 빗댄다. 그래서 생각케 한다. ‘군왕은 무치(無恥)’라고 했다. 왕은 어떤 짓을 해도 부끄럼이 없다는 뜻이다. 더러 신하가 간언하는 것을 듣긴해도 책임을 지는 일은 없다.
청와대가 이런 모양새다. 원칙과 반칙이 혼동되고 상식이 특권에 의해 훼손되어도 책임을 지는 일이 없다. 오히려 잘 한다고 우긴다. 세상에 반성이 필요없는 정부는 없다. 아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게 마련이다. 결단코 선정과는 거리가 먼 이 정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반성은 커녕 오만에 찬 이 정권은 그래서 개혁의 대상이다. 국민사회에 개혁을 요구하기 전에 정권개혁이 선행돼야 신뢰가 싹 튼다. 정녕 ‘바담풍’으로 밖에 안 되면 솔직히 혀가 짧아서 그렇다고 고백해야 된다. 권모술수는 드러난다. 솔직하고자 할 용기가 없어 솔직하지 못하면, 있는 건 악업의 연속 뿐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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