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잊으십시오. 증오를 버리십시오. 모순 덩어립니다. 임기의 중반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과연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정권 내부에서조차 야단들이잖습니까. 벌써부터 겪는 말기적 레임덕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다 자초하신 일이니까요.
실정의 근본이 머릿속 깊이 잠재된 이분법적 사유가 발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양극화의 역학을 대립과 갈등으로 인식한 처방이 혼란을 가져왔다고 판단합니다. 빼앗아서 주는 것을 균형으로 보는 사시적 시각이 가치판단의 혼돈을 가져왔다고 사료됩니다.
몇가지 예를 들까요. 집 값은 강남에서 판교에 이어 분당·용인·과천·평촌까지 급등세 바람이 불어 불과 한 달 사이에 1억원이 오른 곳도 있습니다. 이 무슨 꼴입니까. 잡겠다던 집 값을 올려 놓은 게 일시적 현상이 아닌 데 문제가 더 큽니다. 비싼 강남집 가진자에 대한 증오가 결국 이런 역풍을 가져왔습니다.
지방균형발전은 또 뭡니까. 지방 특유의 산업문화를 현대화시켜 고루 진작케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방을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대립적 관념으로 고착화시키는 생각은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를 반쯤 옮기고, 공공기관 이전을 배급하고, 첨단 대기업을 수도권에서 몰아내기 위해 공장을 못짓게 하면 지방균형발전이 정말 된다고 보시는지요. 이분법적 맹점의 미신입니다. 국민 세부담의 천문학적 재정을 근거없는 무속적 주술로 낭비하는 게 개혁일 수는 없습니다. ‘영세자영업종합대책’이란 또 뭔지요. 국가 권력이 그만큼 하릴이 없어 서민경제 생계까지 규제하고 나서야 합니까. 경제를 잘 돌아가게 하면 서민생계는 절로 잘 풀립니다. 기업을 부도덕시한 반기업 풍조의 조장이 투자를 위축시켜 이 어려움을 가져온 단초가 된 사실을 성찰하셔야 합니다.
양극화 현상은 어느 분야든 다 있게 마련입니다. 또 어느 나라든 다 있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이의 상대적 해소를 어떻게 푸느냐에 있습니다. 가령 중소기업 같으면 중소기업 자체가 잘 돌아가도록 해야지, 대기업을 옭아 맨다고 중소기업이 잘 되는 건 아닙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벌이가 잘 되도록 국민경제를 활성화시켜 주는 것이 잘 사는 길이지, 가진 것 있는 사람의 것을 뺏어준다고 잘 사는 건 아닙니다.
대체로 성장보다 분배에 치중한 그간의 시책이 다 이렇게 해석되는 것은 유감입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바 있는 ‘균등사회의 공동체적 통합’ 역시 그렇게 해서는 결코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균등은 모든 국민계층이 다같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구심적 조건이 충족돼야 하고, 그래야 공동체적 통합이 가능한 것이지 말로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말로 해서 안되는 사례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당선자 시절에 낙하산 인사는 안하겠다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낙하산 부대로 꽉 채워졌습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고 뭐고 할것없이 100여자리가 주변의 사람들로 투하됐습니다. 낙하산 인사는 주관적 요소입니다. 마음 먹기에 달려 안하면 그만인데도 이러는 판에 객관적 충족이 요구되는 ‘공동체적 통합’이 말로 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낙하산에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만약 낙하산 사정이 부득이 했다면 개혁을 더 말씀하실 입장이 못됩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대통령이 생각하시는 원칙과 변칙은 국민이 생각하는 원칙과 변칙 사이에 이렇게 다른 큰 틈이 있습니다. 벌써 닥친 레임덕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있습니다. 평소 대화와 토론을 대단히 좋아하는 면모를 보이려는 것으로 힘쓰지만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대화나 토론에 미리 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춤을 요구하는 결론이 대화와 토론일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 같아도 내심으론 상대를 인정하지 않아 보입니다. 왜 이리 보일까요. 성장 과정에서 잠저시절까지 원한 맺히도록 뿌리박힌 분노와 증오를 버리지 못한 탓 입니다. 다 버리지 못한 잔상이 사물을 아직도 대립적 관념으로만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내치에 투쟁 대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포용의 대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존경받는 대통령의 면모입니다. 제발 국민에게 분노와 증오의 갈등 해소를 말씀하기 전에 대통령부터 먼저 분노와 증오를 내던지십시오. 탄탄대로의 길을 찾는 돌파구가 이에 있습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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